계화 맨손어업 주민들, 부안사회에 말하다! /발제

물막이 공사 완료 후 문포에서 위도까지
생태환경 및 주민생활의  변화에 대해

허정균 / 풀꽃세상을위한모임 운영위원장

   
 
비린내 사라진 새만금 포구들

  지난 3월 13일, 전북도지사와 전라북도 국회의원들이 의원입법으로 ‘새만금종합개발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겠다며 국회의원 173명의 서명을 받아 국회 의사과에 접수하였다. 간척사업의 주목적인 우량농지 조성 대신 종합관광단지, 복합산업단지, 연구개발단지, 새만금신항만, 국제공항, 배후도시 등을 들여앉히려면 용도변경이 필요한데 이에 따르는 번잡함을 피하고 신속하게 개발을 추진하려면 특별입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표심을 잡으려는 유력한 대선주자가 가세하고 나섰다. 지난 3월 5일 전주에 들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이러한 전라북도의 ‘새만금특별법안'에 서명한 것이다. 이튿날 장항읍 장암리 해변을 방문하여 장항갯벌을 둘러본 박 전 대표는 “국가가 약속을 해놓고도 18년 동안이나 방치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며 장항갯벌을 매립하여 조성하는 “장항산단을 대선공약으로 채택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 4월 3일 국무회의를 열어 ‘농업을 위주로 하되 산업·관광·도시 등을 단계적으로 추진(용도별 개발)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새만금 내부 토지개발 기본구상'을 확정했다. 이에 전라북도 외곽 관변단체들이 지역언론과 연대하여 정부를 향해 ‘새만금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외치는 가운데 지난 4월 5일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새만금갯벌에 나타났다.

  새만금간척사업을 착공하게 한 장본인인 김 전 대통령은 새만금전시관에 들러 “감개가 무량하고 가슴이 벅차오르는 심정을 금할 수가 없다”면서 말문을 연 뒤 "새만금은 산업과 농업, 관광 등 다용도로 개발돼 중국과 일본 시장을 집중 공략해야 가능성이 있다"며 "이를 통해 전북도도 그동안 가난에서 벗어나 잘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튿날 전북 도지사와 도의회 의장, 전북대총장 등 각계 인사 200여명이 참석한 오찬에서 “새만금특별법이 조기에 제정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적극 협조해 줄 것을 당부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정치인들의 ‘새만금 찬가'는 ‘새만금'이 이미 신앙처럼 자리잡은 대다수 전북 도민들의 가슴에 두터운 퇴적층을 형성하며 내려앉고 있다. 그런데 이들 정치인들의 눈에는 33km 방조제에 갇혀 사지로 몰린 어민들은 보이지 않는 것일까. 만경강, 동진강 하구를 막아버려 숨통이 끊긴 포구들과 이웃 고을들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33km 방조제가 전라북도 해안 2/3를 봉쇄한지 1년이 다 돼가는 지난 4월 10일부터 닷새 동안 부안에 머물며 방조제 안팎 곳곳을 둘러보았다.


어항 기능마저 상실한 군산, 장항

  군산시 해망동 금강 끝자락에 자리잡은 군산 내항은 1899년 개항한 이래 국제무역항으로, 인근 도서지역을 잇는 여객항으로, 멀리 동지나ㆍ남지나 해상에까지 출어하는 어선들이 머무는 어항으로 기능하며 영화를 누려왔다. 1965년 이후 군산 외항 건설이 본격화 되면서 여객선과 화물선은 모두 외항으로 옮겨갔지만 최근까지 인근 연안에서 조업하는 어선들이 정박하는 어항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었다. 군산 내항에 들어서자 부두는 100여톤급 어선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그러나 출어를 한 기억은 없어 보이고 배들은 녹슬어가고 있었다. 이들을 맞이하던 길게 늘어선 어판장도 텅텅 빈 채로 시멘트 바닥만 내보이고 있다. 상설어시장에는 온갖 어패류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대부분 여수나 목포 등지에서 가져온 것이라 한다. 젓갈시장으로 명성을 날리던 강경포구가 목포에서 담근 젓갈을 파는 것과 비슷한 실정이다. 이제 군산은 어항으로서의 기능마저 상실해버린 것이다. 사정은 강 건너 충남 서천군 장항항도 마찬가지이다. 서천수협에 따르면 장항항의 경우 연간 30억원에 이르는 준설비용을 투자하고 있으나 준설만으로는 수심확보가 어려워 이미 어항 기능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라고 한다.

  이러한 변화의 근본원인은 1990년도에 완공된 금강하구둑이다. 동고서저의 한반도 지형은 대부분의 큰 강들이 서해로 흘러들도록 하고 있으며 하류 부분에서는 경사가 지극히 완만한 특징을 갖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밀물 때가 되면 바닷물이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가 썰물 때 급히 빠지며 쌓인 토사를 먼 바다까지 끌고 내려가 인근 해안에 부려놓아 드넓은 갯벌이 발달하였다. 금강은 부여의 규암포까지, 만경강은 전주포까지, 동진강은 신태인까지 조수가 드나들었다.

  강하구가 둑으로 막히면서 하루에 두 번씩 어김없이 일어나던 이러한 자연현상이 차단되었다. 이로 인해 갈 곳을 잃은 토사가 하구둑 안쪽에 쌓이기 시작했다. 금강호 전역에 이러한 토사퇴적이 누적되어가며 호수는 점점 얕아져가고 있는 것이다. 충남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하구둑 안쪽에 쌓이는 토사량은 연간 80만톤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전에 없던 모래톱이 금강호 안에 군데군데 생기고 하중도(河中島)를 형성하기도 하였다.

  토사퇴적 현상은 하구둑 밖에서도 심각하다. 하구둑이 생기면 거센 조류가 토사를 몰아와 강어귀에 부리는 일이 없어질 것이므로 군산과 장항 항구의 준설비용이 절감될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실제로는 그 반대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장항·군산항의 박지 및 항로상의 토사 퇴적양만 해도 연간 220만㎥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반해 준설양은 약 100만㎥에 그치고 있다. 군산과 장항의 항구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준설비용으로 매년 드는 비용은 연간 130여억 원으로 우리나라 준설 예산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하구둑 축조 이전에는 한 번 준설하면 2~3년 정도는 유지됐다고 한다. 그러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국민 혈세를 쏟아 붓고도 매년 20cm 이상 토사가 쌓여가고 있어 이대로는 앞날을 기약할 수 없게 되었다.

  군산 내항이 토사 퇴적으로 어항기능을 상실하자 정부는 군장산업단지 조성사업으로 갯벌을 메워 육지가 된 군산시 비응도 동남측 해상에 국고 594억원, 민간자본 1,181억원 등 총 1,775억원을 투입, 방파제, 호안, 물량장 시설과 횟집단지 등 배후부지 15만1,579평에 이르는 다기능 복합어장인 ‘비응항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배후의 칠산어장이 황폐화 하여 비응항으로 들어오는 수산물은 그 양이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방조제 축조 공사를 시작할 무렵 전라북도의 일반해면어업 생산량은 8만톤을 상회하였다. 그러나 방조제가 뻗어나가며 계속 감소해오다 방조제가 완공된 2006년에는 2만4천여톤으로 약 1/4로 줄어들었다. <표1 참조>


(출처:해양수산부)

이사하야 간척사업의 닮은꼴 새만금 간척사업

  새만금간척사업보다 9년 앞선 일본 나가사키현의 이사하야 간척사업을 뜯어보면 새만금 연안의 앞날을 예측할 수 있다. 일본의 규슈의 구마모토, 사가, 후쿠오카, 나가사키현으로 둘러싸인 수역면적 1,700k㎡의 큰 만인 아리아케(有明)해는 하구둑으로 막히지 않은 크고 작은 강들이 미세한 뻘과 영양염류를 날라다 부리며 일본 최대의 풍요로운 갯벌을 이루었다.

  아리아케해 전체 평균 수심은 20m이며 안에 작은 만인 이사하야만이 있다. 최대 조석간만의 차가 6m가 넘는 이사하야만에는 수심 5m 이하의 해역과 드넓은 갯벌이 펼쳐지고 있는데 갯벌 면적은 약 3,500ha로 단일 갯벌로는 일본 최대이다. 이는 새만금갯벌의 10분의 1정도이다.

  이러한 이사하야만 갯벌에는 짱뚱어를 비롯한 풍부한 어패류가 서식하였다. 또한 많은 철새가 날아오는 ‘생태계 보고'였으며 이로 인해 아리아케해는 어업인들로부터도 ‘보물의 바다'라고 불릴 정도의 어획고를 자랑하고 있었다.

  아리아케해에서의 생물종의 다양성은 하나의 불가사의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아리아케해에서만 볼 수 있는 빨강기수우렁이 등 특산종만 23종 이상이 알려졌으며, 일본에서 초밥의 원료로 많이 쓰이는 ‘타이라기'라 불리는 조개, 바지락, 키조개 등의 조개류와 게나 새우 등의 갑각류, 기타 어류 등 어족자원이 매우 풍부하여 일본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어업생산이 높은 바다였다. 이는 배후지의 평야지대를 곡류 사행하며 유입되는 감조구간이 긴 강들과 높은 조차에 의해 드러나는  갯벌이 잘 발달하였기 때문이었다.

  일본 농수성은 총사업비 2,460억엔을 들여 이사하야만 내부 3,550ha의 바다를 높이 7m, 길이 7.05km의 방조제로 막고, 그 안쪽에는 내부제방을 쌓아 올려 942ha(처음 1,759ha에서 축소 변경)의 농지를 조성하는 ‘국영이사하야만간척사업'을 1989년에 착공하여 1997년에 방조제를 완성하였다.

  방조제가 뻗어나가며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홀쪽한 아리아케해에서는 조석의 주기가 길어 외해의 주기와 같아지기 위해 크게 공진한다. 이 때문에 간만의 차이가 5m 이상이 넘는 큰 조석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방조제 건설에 의해 조석의 주기가 바뀌어, 아리아케해 전체의 조석도 감소해 버렸다. 조석은 조수의 흐름에도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사하야만이 막히자 아리아케해의 조류도 유속이 느려졌다. 즉 이사하야만은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아리아케해 해수 순환에 있어서 펌프와 같은 구실을 하였는데 이사하야만이 막히자 유속이 30% 이상 감소한 것이다. 약해진 조류는 다시 해수가 상층과 하층으로 나누어지는 ‘성층화' 현상과 진펄이 침전되는 현상을 불러왔다.

  빠른 조류가 해수를 위아래로 혼합하여 공기 중의 산소를 바다 밑바닥까지 전달한다. 그러나 조석과 조류가 약해져 해수가 성층화하면 공기 중의 산소가 해저까지 충분히 전달되지 않아 산소 농도가 적은 층이 해저에 발생하였다. 여름철에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이러한 빈산소층의 발생은 예전의 아리아케해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현상이었다. 이로 인해 저서생물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또한 예전에 나타나지 않던 적조가 빈발하였으며 그 기간도 길어져 어패류가 집단 폐사했다. 개체수가 증가한 몇몇 이매패류도 있었는데 이는 빈산소에 강한 종으로 빈산소화로 인해 다른 동물이 멸족한 후에 일시적으로 재빨리 증가하는 현상을 보였다. 이러한 2매패류 조개의 격증은 갯벌의 악화를 반영할 뿐이라고 아리아케해의 변화를 연구하고 있는 일본의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저서생물의 사멸은 먹이사슬관계에 의해 연쇄 반응을 일으켜 해면어업의 급속한 축소를 불러왔다. 방조제를 막기 직전에 연간 8~9만톤에 이르던 어업 생산량이 방조제 끝물막이 공사가 끝나던 1997년에는 3분의 1로 급감하여 2만 3,000여톤이었으며 2000년에는 1만 톤에도 미치지 못하여 예전의 1/10 규모로 줄었다.

  아리아케해는 특히 대규모 김 생산지로 유명하였으며 일본 전체 김 생산량의 40% 가량이 이곳에서 생산되었다. 겨울에 아리아케해 전면을 수놓은 김발은 장관을 이루었다. 영양염류가 풍부한 아리아케해에서 김은 빨리 자랐으며 아리아케해를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빠른 조류는 적조의 발생을 막아왔다. 1997년 간척사업으로 이사하야만이 닫히자 이러한 장관은 사라지게 되었다. 전에 없던 적조가 자주 발생하였고 그 기간도 해가 갈수록 길어졌으며 이로 인한 김 흉작이 이어졌다.

  적조는 바닷물의 부영양화로 질소, 인 등 무기염류들이 증가하여 미생물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 되어 붉은 색을 띠는 플랑크톤 등의 생물체가 이상 증식하여 이로 인해 바닷물이 붉게 보이는 현상이다. 생활하수가 다량 유입되고 저층에 퇴적된 영양물질이 용출되는 폐쇄성 내만이나 연안에서 발생하곤 한다. 적조가 발생하면 대량 번식된 플랑크톤의 분해를 위하여 산소가 많이 소비되므로 산소부족으로 어패류의 대량폐사가 발생한다. 또 대량 번식된 플랑크톤은 물고기의 아가미에 붙어서 물고기를 질식시키기도 하며, 편모조류인 코콜리디니움은 독을 내뿜어 물고기를 죽이기도 한다.


(이사하야 간척사업으로 인한 아리아케해의 변화)

  김도 적조 플랑크톤도 성장하기 위해서는 영양분인 질소나 인 등의 영양염류가 풍부해야 한다. 아리아케해의 빠른 조류는 하천으로부터 흘러드는 영양염류를 확산시키면서 양식 김에 공급하였다. 그 때문에, 해중의 영양염류 양이 많아도 적조 플랑크톤이 발생하기 어렵고, 적조가 발생했을 경우에도, 빠른 조수의 흐름에 의해 신속하게 해소되었다.

  아리아케해의 물을 뒤집어놓는 펌프 역할을 하던 이사하야만이 간척사업으로 막히자 이러한 일련의 시스템이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조석간만의 차가 약해졌고 조류의 흐름이 느려진 것이다. 이로 인해 염분 농도가 높은 무거운 바닷물은 아래로 가라앉고 강에서 유입되는 영양염류가 풍부한 가벼운 물은 상층에 떠있는 성층화 현상이 나타났다.

  예전에는 높은 조석간만의 차와 빠른 조수가 바닷물을 뒤섞어 놓아 이런 현상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데 성층화로 인해 하천으로부터 흘러드는 물에 포함되는 영양염류가 상층에 집중하여 오래 머물게 되자 이를 먹이로 하는 적조플랑크톤이 대량 번식해 양식 김의 먹이를 빼앗으며 김의 탈색이나 흉작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또한 방조제 안에서도 적조가 발생하여 영양염류가 극히 적은 물이 방류됨으로써 김 흉작의 원인이 되었다.

  다음은 필자가 작년 10월 이사하야 방조제에서 10km 밖에 위치한 다케사키섬을 방문하여 어민 히라카타 노부끼오(52)씨와 나눈 대화 내용이다.

*이곳의 어민들은 몇 명 정도인가.
= 조합원이 420명이었는데 지금은 줄어 300여명 정도이며 어업을 포기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어업을 포기한 사람은 무엇을 하는가.
= 해안에 제방을 쌓는 공사판에 나가 일한다.

*지금 수입은 예전에 비해 어느 정도인가.
= 키조개, 바지락, 게, 새우, 여러 종류의 생선을 잡아 한 해에 2천만엔 정도의 수입을 올렸지만 지금은 1/10도 되지 않는다.

*어족자원이 줄어든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조류 흐름이 느려졌고 해수가 섞이지 않아 아래로 가라앉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무산소층이 발생하여 어패류가 죽었다.

*이러한 사실을 예측하지 못했는가.
= 환경영향평가에서 방조제 밖의 아리아케해는 2%의 영향을 미친다고 하였다. 학자들이 한 얘기이니 우리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보상금은 얼마 받았는가.
= 어황이 좋을 때 한 달 수입 정도였다.

*오늘은 얼마나 잡았는가.
= 예전에는 한번 출어하면 새우 100kg을 잡아 30만엔 정도 수입을 올렸는데 오늘은 새우 10kg과 복어 4마리가 전부이다.

*바다를 다시 살리는 방법은 무엇인가.
= 제방 철거가 최고이겠지만 수문만 개방해도 가능하다고 학자들이 말하고 있다. 아리아케해는 어민들만의 바다가 아니다. 바다가 죽어가자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기고 지역경제에도 큰 타격을 주고 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아리아케해를 복원시켜 옛날처럼 살고 싶다.

<뉴스서천> 2006년 12월 15일자

  이사하야 간척사업으로 인한 이같은 아리아케해의 변화는 현재 새만금에서 거의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새만금방조제는 강이 바다로 흐르는 것을 차단하여 방조제 안쪽은 육지에서 흘러온 영양염류를 바다로 배출하지 못해 부영양화가 진행되고 방조제 밖은 어패류의 먹이가 되는 영양염류를 강으로부터 공급받지 못해 바다의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바닷물이 밀물 때 만경강과 동진강을 거슬러 올라갔다가 썰물 때 후퇴하며 생기는 급한 조류가 사라짐으로써 방조제 밖에서 아리아케해에서 발생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사하야방조제가 아리아케해 전역에 영향을 미쳤듯이 새만금방조제는 서해 전역에 영양을 미칠 것이다. 지난 2월 서천군 마서면에서 만난 김양식을 하는 어민들은 김양식 갈수록 흉작을 이루는 원인을 새만금간척사업 탓으로 돌렸다. 특히 작년 가을에는 가뭄 때문에 금강하구 배수갑문을 열지 않아 영양염류 유입이 더욱 줄어 김 작황이 예년의 60% 정도 줄어들었다며 농촌공사를 찾아가 배수갑문을 개방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으나 물부족을 이유로 열어주지 않았다고 전했다.

 비린내가 사라진 포구들

<방조제 안>

  부안군 동진면 장등리의 동진강 본류와 고부천이 만나는 지점을 가보았다. 방조제가 막히기 이전에는 이곳까지 바닷물이 밀고 들어오던 전형적인 기수역이었던 곳이다. 2005년 여름에 왔었을 때는 이곳은 방게들의 천국이었다. 고부천 하구에 쌓인 진펄 위에 어린 방게들이 엄청난 밀도로 서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도 생명체를 찾아볼 수 없었다. 도요새 10여 마리가 쫑쫑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펄 위 곳곳에 도요새 발자국들이 선명히 찍혀 있었다.

  계화1방조제가 시작되는 동진면 문포는 한낮임에도 쓸쓸하기가 그지 없었다. 80이 넘어보이는 노인 한 분이 봄볕을 쬐며 가뿐 숨을 몰아쉬고 있을 뿐 사람을 만날 수가 없었다. 2.7km 구간이 터져 있을 때만 해도 포구에는 개우렁이나 소라를 까서 가공하는 문포상회가 있었는데 아줌마 7~8명이 분주하게 일손을 놀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포구에 나가보니 강턱으로 올라앉은 배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4공구가 막히며 동진강 하구에서 강 중앙에 있던 갯골이 계화방조제 쪽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만경강 하구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져 갯골이 진봉반도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처럼 동진강 하구의 갯골이 이동하면서 계화방조제 바로 아랫부분을 침식해 들어가며 방조제를 위협하자 농촌공사는 토사의 침식을 막는 공사를 벌이기도 하였다. 포구쪽으로 바짝 다가온 갯골에 차있는 강물은 간장 색깔을 띠고 있었다.

  부안군 계화면의 계화도는 새만금갯벌의 중앙에 있는 섬이었으나 60년대 계화도 간척사업으로 육지가 되었다. 현재 500여 세대 2,00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데 섬진강 다목적댐으로 인한 수몰민들이 간척지 땅을 불하받으며 이곳에 이주해온 주민들을 제외한 원주민 대부분은 갯벌에만 의지해 살아왔다. 이들 인구가 절반 정도이다.

  작년 4월 방조제로 물길이 완전히 차단되었으나 배수갑문을 통해 해수가 간간히 유통되며 갑문 근처에 많은 백합이 높은 밀도로 서식하였습니다. 그러나 농촌공사는 갑문 개방을 공사에 맞추어 부정기적으로 해왔다. 그 바람에 물때를 알 수 없는 어민 2명이 갑자기 갑문을 여는 바람에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작년 12월 이후 이들은 백합이 나오지 않아 일손을 놓았다. 맨손어업으로 하루 2~3만원이라도 벌었던 이들은 이웃집 애경사에 가져갈 부조금도 걱정해야 할 형편이다. 그레(백합을 채취하는 도구)를 끌던 일손을 놓자 아줌마들은 여기저기 아픈 데가 생겨나기 시작하고 어떤 이들은 우울증에 시달려 정신병원에 가기도 하였다. 뇌경색 치료약을 장기 복용한다는 은아무개(63) 아주머니는 약을 타러 부안읍내 병원에 갈 차비 마련도 어려워 병원 청소라도 해주고 약을 타다 먹어야 할 형편이라고 하소연했다.

  바다에만 매달려 생업을 이어온 어민들은 갈 곳이 없다. 선외기를 트럭에 싣고 이웃 고창으로 가서 고기잡이를 해보려 하다가 두 달만에 되돌아온 사람도 있다. 방조제 밖에서도 어족자원이 줄고 있는데 고창 어민들이 그를 반길 리 만무하다.

  새만금연안 1200여척 어선의 선주들 상당수가 수천만원에서 억대가 넘는 빚을 지고 있다. 보상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더 큰 빚을 지고 있다고 한다. 보상금을 받아 타지에서 양식업을 하거나 배 성능을 강화하는 데 투자하여 더 크게 망했기 때문이다. 생태계 변화로 특정 어류가 일시적으로 개체수가 늘어나 배 용도를 변경하는 데 들어간 비용도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주꾸미잡이 배로 개조했다가 숭어잡이배로, 숭어가 안잡히고 백합이 많이 잡히자 너도나도 조개채취선으로 개조한 것이다. 융자를 받을 때 보증을 서 준 이웃 때문에 개인파산 신청도 쉽게 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한다.

  위도에서도 어민들의 빚은 심각하다. 근해에서 고기가 잡히지 않으니 더 먼 바다로 나가기 위해 더 큰 배로 바꾸었고 이에 따라 기름값도 더 많이 들었다. 10년 새에 규모도 3배로 늘었고 빚도 3배로 늘었다고. 그렇다고 고기가 많이 잡히는 것도 아니다. 투자한 돈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이런 틈을 노리고 들어온 것이 핵폐기장이었다. 3억~5억씩 현금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주민들 대부분 서명을 해주었다.

  계화도 주민들의 구매력이 떨어지자 호프집, 다방, 음식점 등도 장사를 거두었고 여파는 부안읍 시장 상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부안읍에서 치킨센터를 하는 한 상인은 “계화도가 저리 되는 바람에 부안 시장 상인 대부분이 장사가 안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계화도가 죽어가는데도 “조합장, 면장, 군수 누구 하나 와보는 사람이 없다”며 계화도 아줌마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방조제 어민들만 피해를 입는 것이 아니다. 횟집, 어시장, 어구제작업소, 조선소, 수산물 가공업 등이 유발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이다. 이사하야만에서 만난 ‘아리아케해 어민·시민네트워크' 사무국장인 도키츠씨는 이러한 유발피해액까지 합하면 간척사업으로 인한 피해 총액은 수산물 생산 피해액의 10배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당장의 생계를 마련해 준다며 새만금사업단은 몇 개의 사업을 제시하고 있다. 환경감시원으로 일하게 하거나 갯벌에 염생식물이나 보리 종자를 파종하는 일, 갯벌의 비산먼지를 막는다며 거적데기를 덮는 일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어민대책위 고은식(45) 사무국장은 “그런 일시적인 일은 생색내기용일 뿐”이라며 “개인의 고민을 공동체 전체의 문제로 가져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시민단체와 연대하여 마련한 갯벌배움터 ‘그레'를 갯벌 파괴의 재앙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교육장으로 만들기 위해 시설 보강 작업에 땀을 쏟고 있었다.

<방조제 밖>

  지난 3월 31일 새만금방조제 바깥바다에 해일이 일어 전북 부안군과 고창군, 영광군에까지 이르는 해안을 덮쳐 사망자 4명, 주택 점포 등 일시침수 181여동, 차량 20대, 선박 56척이 전복되거나 유실되는 피해가 발생했다. 이날 새벽에 발생한 해수면 범람에 대해 기상청은 "지형적 영향과 만조 등의 복합적 상호작용으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으나 어민들은 한결같이 새만금방조제 탓으로 돌렸다. 방조제가 막히기 전에는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변산해수욕장 아래 주꾸미잡이를 하는 어민 박진순(56)씨는 바람도 불지 않는데 ‘쉬익-'하는 소리가 나 밖에 나가보니 6미터가 넘어보이는 큰 파도가 곧추 서서 방파제 안으로 밀려와 배들이 하늘을 쳐다보며 일어나 전복됐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위도 진리에서는 정금도를 잇는 다리가 파괴되었고 파도가 갯벌을 파 훑으며 올라와 담장을 무너뜨리고 민가를 덮쳤다. 이에 바닷물이 안방에까지 침범하여 텔레비전과 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망가뜨렸다. 이날 사건으로 인해 장판을 뜯어내고 도배작업을 하고 있던 진리 마을 이장 서봉신(63) 씨는 바닷물이 저만큼 물러나 100여 미터 이상 갯벌이 드러난 바다를 가리키며 “당시에도 조금 물때였고 만조도 아니어서 저 정도였다.”며 만약 만조 때에 벌어졌다면 마을 대부분이 파괴됐을 거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방조제 밖에서 만난 어민들은 “언제 또다시 이런 일이 닥칠지 알 수 없다”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아직도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방조제 밖의 포구에서도 비린내가 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포구들마다 빈 배들로 가득 채워져 있을 뿐 잡은 고기를 내리거나 출어를 준비하는 모습은 아예 찾아볼 수도 없었다. 격포에서 주꾸미잡이용 소라그물을 손질하고 있던 어민은 “100개짜리 한 다발 건지면 주꾸미가 들어있는 소라껍질은 서너 개나 될 뿐이고 나머지는 뻘만 가득 차 있다”며 방조제 때문에 유속이 느려져 뻘이 쌓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뻘 속으로 소라그물이 묻혀버린다는 것이다. 어획량은 예전의 1/10 정도 수준이라 한다.

  곰소만 안쪽 모항에서 주꾸미잡이를 해오는 어민 김영춘(48) 씨는 “조류가 곰소만 안으로까지 들어오지 않고 입구인 고창 심원면 부근에서 빙빙 돌다 나가버린다”며 “조류의 방향도 수시로 달라져 어느 방향에 맞추어 그물을 설치해야 할지 결정도 못 내린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어민들이 3년 전부터 피해를 피부로 느끼기 시작하면서 간척사업 반대 안한 것을 후회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올해 대학에 들어간 딸과 고등학생과 초등학생의 자녀가 있는 김씨는 “앞으로 살길이 막막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위도의 치도리 앞 갯벌은 예전에는 축구를 할 정도로 딴딴한 모래펄 갯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발목이 푹푹 빠지는 진펄로 바뀌었다. 인공어초를 심어놓은 해역도 진펄이 쌓여 인공어초를 덮어버릴 정도라 한다. 2005년 9월 부안군은 백합 양식 종패지원 명목으로 총 사업비 1억 2천만 원 가운데 절반인 6천만 원을 지원하여 위도와 변산면 연안 갯벌에 종패를 뿌렸다. 이들이 방조제에 인접한 해역에서부터 폐사하기 시작했다. 위도 근해에서 예전에는 밀물이나 썰물의 한 방향만을 향해 그물을 놓았으나 지금은 유속이 느려지고 예고없이 배수갑문을 열어 그물이 엉키기도 하여 자동으로 방향전환을 하는 ‘뺑뺑이 그물'을 놓기도 했다.

  최종 물막이공사가 끝난 지 한 달쯤 지난 5월부터 방조제 안에서 적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적조생물의 사체로 인해 발생한 거품이 변산해수욕장으로 밀려들면서 여름철 해수욕장을 찾은 많은 관광객들이 발길을 돌렸다. 이러한 적조 발생은 위도 근해에서도 자주 발생하고 있음이 어민들에 의해 관찰되었다. 이러한 적조 발생은 일본 규슈의 아리아케해에서 보듯 유속이 느려져 생긴 성층화로 상층에 영양염류가 집중되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적조생물의 사체로 인해 생긴 것으로 보이는 거품이 위도 서쪽 해안으로 밀려들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새만금간척지 사용 가능한가

  면적이 8,050.94㎢인 전라북도는 제주도, 충청북도에 이어 세 번째로 작은 도이다. 그러나 전라북도는 낙동강의 지류인 남강, 금강, 섬진강, 만경강, 동진강 등의 발원지이다. 이 가운데 금남정맥, 호남정맥, 정읍 방장산에서 갈라져 나온 변산지맥으로 둘러싸인 만경강과 동진강은 그 유역 면적이 2,606㎢로서 전라북도 면적의 약 32%를 차지하고 있으며 거주하는 인구수는 약 125만으로 190만이 안 되는 전북 인구의 67%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말 그대로 전북의 젖줄인 셈이다.

  새만금방조제 33km는 이러한 두 강의 하구를 포함한 전라북도 해안의 2/3 가량을 봉쇄하고 있다. 새만금사업은 방조제 안의 40,100ha(1억2,030여만평)의 해수면을 2만8,300ha의 땅과 1만1,800ha의 담수호로 만드는 사업이다. 방조제 안쪽에 총연장 138km의 방수제(防水堤)를 쌓아 담수호인 새만금호를 만드는데 농촌공사(구 농업기반공사)에 따르면 “새만금 간척지는 외부 방조제를 높게 막고, 내부에 소규모 제방인 방수제를 3.5m의 높이로 쌓아서 물을 퍼낼 수 있게 함으로써 간척지를 해수면보다 낮게 조성한다”는 것이며, “간척지의 평균 높이는 대체로 호수면 평균 수위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또한 “담수호 수위는 배수갑문 조작을 통해 일정수위(관리수위)로 관리되고, 홍수 예경보시에는 바닷물이 빠질 때 관리수위(EL-1.50m) 이하로 배제시켜 홍수를 사전에 대비한다”는 것이다.

  새만금간척사업은 만경?동진강 수역에 내리는 모든 빗물은 방조제에 설치된 두 개의 배수갑문을 통해서만 외해로 방출해야 한다. 그것도 담수호인 새만금호의 평균 수위가 해수면보다 낮기 때문에 썰물 때에만 갑문을 열 수 있다. 전라북도 면적의 1/3에 해당하는 만경강 동진강 수역의 물을 이같은 방식으로 바다로 빼내는 일이 가능할까.

  새만금간척사업은 별도의 토사매립이 없이 기존 원지반을 정지하여 토지로 만드는 사업임을 새만금사업단은 밝히고 있다. 따라서 새만금사업은 간척지 대부분과 새만금호의 수위가 평균해수면보다 낮으며 간척지 거의 전부가 만조 때에는 해수면 아래에 있게 된다.

  새만금방조제에 가력갑문과 신시갑문의 두 개의 배수갑문이 있다. 만경강과 동진강 수역, 그 밖에 두 강을 통하지 않고 직접 바다로 배출하던 부안군의 해창천, 두포천, 군산의 어은천 등 크고 작은 하천의 수역에 새만금간척지 40,100ha의 면적까지 합하면 모두 373,000ha에 쏟아지는 모든 빗물이 이 두 배수갑문을 통해서만 바다로 빠져나가게 된다. 장마 때 집중호우가 내리더라도 배수갑문을 통해 침수피해 없이 빗물을 외해로 내보낼 수 있어야 우량농지를 만들든 산업단지를 만들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동진강, 만경강 물을 받아 가두어 두는 새만금호의 관리수위는 평균해수면보다 1.5m 낮은 EL-1.5m이다. 이같은 조건 아래 새만금호에서의 홍수 배제는 가력배수갑문과 신시배수갑문을 통한 내수위와 외수위의 조위 차에 의해 이루어지며 따라서 배수갑문을 열어 새만금호의 물을 외해로 방출할 수 있는 시간은 해수면이 EL-1.5m 이하로 내려가는 때로 제한된다. 이는 1일 2회 7.12시간에 불과하다. 이 시간 동안에 막대한 양의 물을 바다로 자연배수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만경강, 동진강 본류와 지류의 유역 면적과 이 밖에 곧바로 간척지로 유입되는 작은 하천들의 수역까지 합하면 두 개의 배수갑문이 감당해야 할 유역 면적은 33만1,900ha이다. 여기에 간척지 4만100만ha를 합하면 37만2,000ha가 되며 이는 담수호 1만1,800ha의 31.5배에 달한다.

  이 유역에 300mm(0.3m)의 폭우가 쏟아질 경우 담수호인 새만금호는 2~3일 안에 이 물을 대부분 받아들여야 한다. 일부의 빗물이 증발과 산림, 농지 등에 의한 저장으로 70%(210mm)만 호수에 유입된다고 가정하더라고 <0.3m×70%×31.5배=6.62m> 즉, 6.62m의 호수면 상승이 있어야 수용할 수 있는 양이다.

  300mm 폭우시 유역면적의 빗물 양은 11억1,600만㎥(0.3m×37만2,000ha×1만㎡)로 이 가운데 70%가 수일 내에 호수에 유입된다고 하면 유입될 빗물의 양은 7억8,120만㎥이다. 이는 새만금호의 총저수량 5억3,400만㎥를 훨씬 웃도는 양이다. 호수면이 2m 상승하여 EL0.5m가 되어 통수단면의 높이를 7m로 하고 갑문이 열려있는 동안의 평균 유속을 새만금사업단이 제시한 것을 그대로 인정하여 1㎥/sec로 할 때 1일 홍수 배제량은 9,700만㎥이다. 이를 토대로 계산하면 300mm 집중호우가 내릴 때 이를 배수갑문을 통해 모두 방출하는 데에는 대략 8일이 걸린다.

  빗물이 나발대처럼 벌어진 동진강 만경강 하구의 갯벌을 통해 일시에 방류하지 못하고 썰물 때에만 배수갑문을 열어 방출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홍수가 만경강과 동진강 제방을 넘어 범람하여 장기 침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방조제는 육지에서 떠내려 온 토사가 방조제 안에 갇혀 호수 바닥은 점점 얕아지므로 홍수 피해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더구나 새만금사업단은 300mm 이상 집중호우가 오는 빈도를 200년에 한번 꼴로 잡고 있다. 이는 새만금간척사업 설계를 합리화하기 위해 지나치게 낮게 잡은 수치일 뿐이다. 2004년 8월 3일 새벽에 동진강 유역에 350mm 이상의 폭우가 하룻밤 사이에 내렸다. 더구나 최근 들어 지구온난화의 가속화로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이같은 안이한 태도는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간척의 나라 네덜란드는 폭우가 오지 않는 나라이고 1일 최대 강우량이 30~50mm 정도이며 연중 강수량 분포도 고르다. 따라서 비가 와도 풍차를 이용하여 물을 퍼낼 수 있어 바다보다 낮은 간척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여름철에 강우가 집중되며 하룻밤 새에 수백mm의 비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한국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장기 침수가 뻔히 보이는데 그 땅에 누가 농사를 지을 것이며 어떤 시설을 들여앉힐 것인가. 새로 생긴다는 간척지 땅은 갈대숲만 우거질 뿐 어떤 용도로도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정치인들은 새만금을 이용한 표심잡기에만 몰두하며 어민들은 그냥 그렇게 살다가 죽으라는 듯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어민들을 제외한 전북 도민들 대부분은 아직도 “갯벌 막아놓고 보면 꼭 논으로만 쓸 수 있간디. 공장도 들어서고 그러면서 차츰 뭐가 돼도 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들이다. 그러나 새만금사업은 건설자본의 갈증만 풀어줄 뿐 국민에게는 대재앙일다. 더구나 국책사업이므로 전국민이 낸 세금이 밑빠진 독에 물붓듯 들어가고 있다.


▲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