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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담집을 아십니까?
| 2006·04·17 06:18 |
주산면 소주리에 아직도 남아 있는 토담집ⓒ부안21


[환경이야기] 아파트 밀림 속에서 되돌아보는 주거문화

전통 민가의 몰락

  국도와 지방도로는 물론 동네 고샅길까지 시멘트로 포장되면서 우리들은 흙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고 있다. 농촌사람들의 손끝에도 흙보다는 비닐이 자주 와닿고 있으며 농부들은 이제 비닐을 파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상적인 농촌 환경이 이러한데 도시인들의 기억 속에서 흙을 떠올린다는 것은 어쩌면 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불과 40여년 전만 해도 대다수가 흙집 속에서 살았다. 기와집이건 초가집이건 벽체는 모두 흙으로 마감하였고 창호지로 된 창문을 통해 바깥과 소통하였다. 매년 철이 되면 창호지도 갈고 파손된 일부 벽체를 어루만져 수선을 하였다. 더욱이 농촌에서는 따로 장인을 부를 것도 없이 누구나 스스로 집을 건사하였다. 그 누구의 간섭도 없는 해방의 몸짓이었던 것이다.

  70년대의 새마을 운동으로 전국의 농가가 하루 아침에 헐리고 슬레이트를 뒤집어쓰게 되었다. 우리는 서구식 건축교육 덕분에 이 땅 위에서 벌어지는 역사상 전례가 없던 농촌의 지붕 뒤집기에 불감증을 드러냈다.

  그러나 위정자들의 말대로 초가집은 가난의 상징인 것인가? 여기서 ‘새마을 운동’을 재평가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국적불명의 허리 짤린 시멘트 슬라브 대신 우리 환경에 맞는 농촌주택의 잃어버린 뿌리를 되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는 잃어버린 우리의 농촌의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현실적 요구이기도 하다.

민초들의 노동재생산 피난처 토담집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노비나 천민은 물론 대다수 민초들은 토담집이나 움집에서 기거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거처를 무시하고 양반들의 건축물을 우리 전통 민가의 전형으로 오도해서는 안될 것이다.

  농업 노동에 의지하며 사는 민초들에게 대목이나 소목의 품삯을 대며 살 집을 마련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기에서 우리의 관심은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노동재생산의 피난처인 토담집을 마련하였는가에 쏠린다.

  이들은 낮에는 들에서 일하며 틈틈이 서까래로 쓸 나무들을 하나 둘 마련하다가 어느 시점에서 모든 준비가 갖추어졌다고 판단될 때 담틀(마을 공동의 생산도구)를 빌려 비로소 집을 짓기 시작했다. 일시적으로 필요한 많은 노동력은 마을의 두레공동체가 해결해주었다. 노비들은 낮동안의 고된 노동을 마치고 밤에 횃불을 밝히며 동료 노비들과 함께 집터를 다지고 흙벽을 쌓았다.


주산면 돈계리에 있는 한 전통가옥의 바람벽ⓒ부안21

  단순한 집이었으므로 거창한 기초공사도 필요없었다. 여럿이 지점돌(돌달고)로 터를 다지고 주위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잡석과 흙으로 지표면보다 다소 높게 담받을자리(담부자리)를 마련한 다음 채취해둔 흙을 담틀에 넣고 공이로 다져 ㄷ자형으로 벽체를 만들었다. 이 때 흙은 자연 수분상태의 흙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물을 섞지 않았다. 물의 잘못된 사용은 수축시 균열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 다음 전면에 나무 기둥을 칸에 따라 세우고 그 위로 약식 도리를 친 다음 서까래를 얹어 골격을 완성하였다. 대체로 길어야 사나흘이면 집을 지었다 한다. 이렇게 야밤을 이용해서 후딱 해치우듯 짓는 집을 사람들은 도둑집이라 불렀다. 도둑질하듯 빨리 집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같은 처지의 마을사람들의 도움과 효율이 높은 담틀의 사용방식 때문이었다.

  흙벽은 여름에는 단열효과로 실내를 시원하게 해주고 겨울에는 축열된 열을 집안으로 보내어 따뜻하게 해주었다. 흙벽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이며 경제적인 건축자재로서 우리 조상들의 가장 친근한 벗이었다.

시멘트 문화 속의 가난한 정신

  어느 나라이건 전통 가옥의 재료는 집 주위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을 재료로 삼는다. 그래서 통나무집도 있고 얼음집도 있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초원을 찾아다니던 몽골의 유목민들은 아예 집을 조립식으로 만들었다. 우리 조상들이 집 주변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건축 자재란 흙, 나무, 돌, 볏짚 등이었다. 그러나 이를 이용해 만든 토담집이 거주자의 신분이 낮다고 해서 흙집 자체를 가난하고 비문명적인 것의 상징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남대문이나 경복궁 또는 사찰 건물들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문화재라는 이름 아래 보수와 중건을 반복하면서도 우리의 또 다른 전통, 다시 말해 민중의 소박한 건축술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지금이라도 우리 주변에서 이 모든 것이 사라지기 전에 체험담을 수집하고 기능을 보전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또한 흙건축에 관한 동서양의 다양한 기술과 지혜를 모아 새로운 형태를 창조해야 할 것이다.

  흙은 가난과 궁핍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시멘트와 철골은 풍요와 문명의 대명사처럼 여겨왔으며 이미 아파트는 도시를 떠나 농촌에까지 파고들고 있다. 이제 우리는 흙의 무한한 잠재력을 다시 한번 일깨울 필요가 있다. 현대인에게 실존적 삶의 참모습을 되돌려주기 위해서이다. 흙은 가난할 수 없다. 다만 우리들의 정신이 가난한 것은 아닐까.

/허정균/huhjk@buan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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