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21

부안여고 영상동아리 ‘고무신’ⓒ부안생태문화활력소

1월 22일부터 25일, 3박4일 동안 부안여고 영상동아리 고.무.신 8 Frame 영화제작 워크샵을 진행했다.

고.무.신 은 고정관념을 무시하는 신의 아이들이고, 8 Frame은 8기수 라는 의미라고 한다.

22일 : 영화보고 토론하기, 영화 기획하기, 영상문법, 촬영연습
23일 : 편집연습, 촬영실습
24일 : 촬영실습, 편집실습
25일 : 편집실습, 상영회

사업주관 : 부안생태문화활력소, 전주시민미디어센터 영시미
사업지원 :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후원 : 복권위원회, 문화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여고 영상동아리 ‘고무신’ⓒ부안생태문화활력소

이번 부안여고생들의 영화제작 워크샵이 만들어지는데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이 사업은 '부안 농어촌사회에서의 지역적 삶과 영상문화예술교육의 유쾌한 만남'(2006년 6~8월 사업진행 계획)이라는 꽤나 긴 제목의 프로젝트가 진행에 어려움을 겪다가 그 사업이 축소변경되면서, 별도의 사업으로 기획되었다. 그 사정이란, 후원단체인 부안군에서 지원을 약속했지만, 춘경 예산책정이 되지 않아 사업기간동안 지원금을 교부하지 않았다가 추경예산이 통과되고, 10월 말에서야 지원금을 교부했다. 지원금 교부가 행정절차상 일괄지급의 원칙 때문에, 다른 후원단체에서 이미 지급된 후원금까지 부안군에서 묶여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활력소의 주민영상교육은 7월에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11월에 교육을 재개하려고 했지만, 추수기와 겹쳐서 교육진행이 어려웠고, 그나마 교육생도 반이상 줄어들었기 때문에, 사업자체를 폐기하지 않으려고 다른 교육을 준비한 것이 부안여고 영상동아리 고.무.신의 영화제작 워크샵이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관행 때문에 약속을 못 지킨 부안군 덕택에 활력소와 '고.무.신'이 만나게 된 것이다.

이번 워크샵은 고.무.신 8 Frame의 학생 11명이 참여했고, 두개의 팀이 두개의 습작 영화를 만들었다.

말하고 싶어요
시나리오, 연출 최지연

이 작품은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이 사회와 소통하는 도구로서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표현하고 있다. 진달래라는 인물은 부모님의 말들에 상처받아 말하기를 멈추었지만 다시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말을 시작한다는 내용의 판타지 영화다.

시나리오는 워크샵 전에 사전 모임에서 미리 작성하기로 했고, 워크샵 1주일 전에 학생들이 작성했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이 영화를 워크샵 기간 동안 만들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시나리오 내용과 계절이 맞지 않았고, 배우들은 어떻게 캐스팅 할지 등의 걱정이 되었지만, 워크샵 기간 동안 약간의 시나리오 수정과정을 거쳤고, 배우들은 고.무.신 8 Fram(A팀은 이유는 알수 없지만 의도적으로 Frame에서 e를 생략해서 '프램'으로 읽고 표현했다)에서 모두 캐스팅했다. 마지막 이틀동안 활력소 근처와 격포 바닷가 등지에서 촬영했고 동시에 편집을 진행했다. A팀은 영화의 완성도 보다는 제작과정에서 친구들과 재밌는 노는 것에 더 중심을 두는 것 같았다. 그건 영화에서도 엔딩크레딧과 에필로그를 통해 잘 표현되었다. 내용은 대단히 무겁고 철학적인데 제작은 매우 즐겁고 신나는 과정이었다. 그런 것이 여고1년생의 정서인지도 모르겠다.

A팀 시나리오와 연출을 담당한 최지연의 제작발표 모습ⓒ부안생태문화활력소

A팀의 편집과정은 자신들의 끼를 발산하는 에필로그 부분 때문에 대단히 시끌벅적했다.ⓒ부안생태문화활력소

종이에 직접 쓴 글씨를 엔딩크레딧에 활용하는 재기발랄함을 보이기도 했다.ⓒ부안생태문화활력소

하늘 바다 수평선

시나리오, 연출 김지혜

이 작품은 하늘과 바다가 서로 다르지만 만나는 지점이 아름다운 수평선이란 의미의 제목이다. 착하기만 한 언니와 계산에 밝은 동생 사이에서 알바와 용돈의 문제로 벌어지는 갈등과 화해를 그린 드라마다.

이 작품도 워크샵 기간동안 제작이 가능할지 의문이었지만, 아쉬운 대로 닥치는 상황들을 잘 활용하고, 전주와 격포에서 즉석 헌팅과 캐스팅 등의 실력(?)을 잘 발휘해서 워크샵 기간에 제작을 마칠 수 있었다. A팀도 그랬지만, B팀의 시나리오를 봤을 때 느낌은, 아이들이 참 착하다는 것이었다. '갈등-화해'라는 구도 자체가 그렇고, 갈등을 빚는 주요 등장인물들이 너무 착하게 표현되었다. 그래서 두 자매의 캐릭터를 더 강하게 만드는 정도의 시나리오 수정을 거치기도 했다. B팀은 A팀에 비해 드라마에 공을 많이 들였고, 상대적으로 쉽게 쉽게 만드는 A팀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전주 시내에서 편집교육의 짬을 이용해서 거리 씬을 찍은 B팀ⓒ부안생태문화활력소

미디어운동과 영상교육의 확장

이번 워크샵을 공동 진행한 부안생태문화활력소와 전주시민미디어 영시미 두 단체는 모두 지역 미디어운동에 대한 목적 속에서 영상교육을 진행했다. 여기서 지역 미디어운동의 현황이나 방향을 자세히 논할 필요는 없지만, '지역 미디어운동 = 퍼블릭 액세스 =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등식의 접근법이 미디어활동가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전제되어 있는 상황에서, 고.무.신과의 만남은 퍼블릭 액세스를 극영화와 실험영화로 확장하는 실재적인 기회를 만들었다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실제로 영시미에서는 청소년 극영화 제작에 지원해왔고, 그 결과와 성과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영시미의 청소년 영상교육 커리큘럼은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 중심이었다. 영시미 뿐만 아니라 전국의 미디어운동의 영상교육 커리큘럼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중심이고, 활력소 또한 이 방식으로 영상교육을 접근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이 만들어진 배경은, 미디어활동가들이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극영화는 어렵고, 다큐멘터리는 쉽다', '다큐멘터리가 사회적 문제의식을 드러내기에 더 적당한 매체다' 라는 등의 근거없는 그릇된 인식에서 출발한다. 고.무.신이 이번 워크샵에서 기본적인 영상교육과 제작기회를 제공받았다면, 활력소는 미디어운동에서 근거없는 그릇된 인식을 깨는 소중한 배움을 얻었다.

남은 것들

이번 워크샵에서 제작된 두 작품은 열악한 조건에서 짧은 시간에 얼렁뚱땅 만들다보니, 작품성이나 완성도가 낮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제작주체와 활력소의 만족도는 작품성이나 완성도와는 별도로 매우 높게 평가되고 있다. 고.무.신 1학년생들에게 한번의 제작기회가 제공된 것 자체가 앞으로 이 학생들의 영화제작에 대한 열정을 엄청나게 업그래이드시켰고, 활력소는 부안 사회의 척박한 미디어운동에 첫발을 내딛였다는 점이 그것이다. 또한 작품을 보면 알겠지만, 고.무.신의 가능성은 제작조건과 시간 등의 지원에 따라 이들의 재능이 무한하다는 것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그리고 8 Frame 친구들이 빠듯한 학교생활의 조건에서 다같이 친하게 지낼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 워크샵을 통해서 서로 더 잘 알게 되고 친해질 수 있었고, 다음 작품에서 팀웍을 잘 살릴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긴다고 마지막 평가에서 입을 모으기도 했다.

이번 워크샵의 성과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보석의 원석을 발견한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이 원석을 어떻게 다듬느냐 하는 것이다. 이번 워크샵에도 학교의 지원(담당교사 이동훈)이 매우 소중했는데, 이후 끊임없는 관심과 지원이 단순히 학교와 활력소 그리고 미디어 활동가들의 몫만은 아니다. 이들의 작품활동이 부안 사회에 활발히 소통되기 위한 사회적, 행정적 지원 또한 필요충분조건이다.

부안여고 영상동아리 고.무.신이 빛나는 보석이 되길 기대한다. 그리고 부안 지역의 다른 학교들도 청소년 영상교육에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길 기대한다.

/허성호/부안생태문화활력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