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21

매창뜸, 교육청 앞 마을. 공동묘지에 조선조 때 명기(名妓) 이매창(李梅窓)이 묻혀 있어 생긴 이름이다.ⓒ부안21

  우리의 옛날 땅이름들은 지금과 같이 두 음절로 된 한자어 이름이 아니고 순수한 우리말로 된 세 음절 이름이 중심을 이루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이와 같은 사실은 옛 기록들에서도 충분히 유추하여 볼 수가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지리지 등에 보이는 삼국시대 당시의 땅이름들이 세 음절 또는 네 음절의 한자어로 표기되어 있음은 당시 이 땅에는 우리말을 표기하는 나라글자가 없었기 때문이며, 그래서 한자의 음과 뜻을 빌어 고유어에 가깝게 표기하려고 노력한 흔적들이다.

  신라가 당나라의 힘을 빌려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멸망시켜 통일을 이룬 후 경덕왕(景德王) 16년(757)에 당나라 문물의 제도를 본받아 행정조직과 관직의 직제 등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면서 땅이름도 두 음절로 된 당나라의 방식을 본받아 순수 우리말 땅이름을 버리고 두 음절의 한자어 땅이름으로 고쳐버렸음은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다. 이후 순수 우리말 땅이름은 점차로 소멸되어 갔으며 특히 행정적인 땅이름은 한자어 이름으로만 개칭하여 갔다.

  땅이름의 종류는 대체로 행정구역 땅이름과 산천의 자연 땅이름. 그리고 인공적인 땅이름 세 가지로 분류하여 볼 수 있는데 해정구역 땅이름은 국가가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을 통제 관리하기에 편리하도록 의도적으로 넓게 또는 좁게 구획한 일정지역에 이름을 붙인 것인데 오늘날의 시 (市). 도(道). 군(郡). 동(洞). 구(區). 읍면(邑面). 리(里) 등의 명칭들이 그것이다 지금 이들 해정구역 이름에서는 수도인 “서울”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한자어 이름으로만 되어 있다.

   자연 땅이름은 원래의 모습 그대로의 하늘과 땅. 바다를 비롯하여 높고 낮은 산과 강하(江河). 포구(浦口). 고개와 재(峴峙). 골자기(谷). 곶이(串). 나루터(津). 내. 개울. 개천. 도랑. 바위. 너설바위. 논과 밭. 늪. 들. 버덩. 벌. 만(灣). 모래톱. 모롱이. 못(沼). 호수. 산맥 섬. 숲. 여울. 폭포. 해협. 목(項). 금이(金. 九味) 등으로 이들 자연 땅이름에는 지금도 순 우리말 땅이름들이 상당 수 남아 있음을 볼 수 있어서 우리말 땅이름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인공적인 땅이름이란 사람들이 필요에 의하여 일정한 장소에 만들어 놓은 붙박이 시설물들을 말함인데 그것이 차지하고 있는 장소를 나타내는 땅이름을 말한다. 즉 길. 마을 공원. 놀이터. 고적(古蹟). 광산. 다리. 서낭당. 동산. 보뚝(제방). 공동묘지. 성곽. 빨래터. 수원지. 저수지. 역(驛). 염전. 온천. 우물. 시장 등이 그것들이다. 여기에서도 순수 우리말 땅이름을 적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따라서 자꾸만 사라저가는 순수한 우리말 땅이름은 행정 땅이름 외에서는 그래도 미약하게나마  끈질긴 명맥을 만나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우리 부안지방의 자연 땅이름이나  인공적인 땅이름들만도 수 만여 개에 이를 것이다 이들 중에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함축하고 원형으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우리말 땅이름들만도 수 천개에 이를 것이어서 이를 모두 찾아 정리하여 놓고 그 안을 들여다보면  부안의 옛 문화가 보다 더 확연하게 보일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 일은 세월과 함께 잊혀져 가고 있는 시급성 때문에 필요하고 급한 일이기는 하지만 나의 지나친 욕심일 뿐이요 어찌 한 개인의 힘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땅이름은 그곳의 역사와 문화가 화석(化石) 되어 있는 소중한 문화재라고도 말한다. 그 중에서도 순수한 우리 말 땅이름 속에는 그곳의 역사 문화가 담겨져 숨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꾸밈없는 소박한 말. 다듬어지지 않은 그대로의 원석(原石) 같은 옛말로 이루어진 이름이기에 더 토속적이요 정겨우며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래서 나는 중.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던 젊은 시절부터 우리 고장의 순수 우리말 땅이름들에 매료되어 깊은 관심을 기우려 왔었다. 그동안 조사 수집된 이들 땅이름들 중에서 사람들이 몸담고 살아온 마을의 이름들을 우선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말 마을이름들에서 나무깨. 돼지터. 검은곶이. 웃시암골. 삼밭실 등과 같이 완전하게 순수한 우리말로 된 마을이름을 중심으로 하되 여기에서는 새포. 남문거리. 상터. 봉두메. 삼거리. 구장터 등처럼 우리말과 한자가 합성하여 이루어진 마을이름들도 가급적 우리말 이름에 포함하여 처리하기로 한다. 그리고 돌팍거리. 한뼘거리. 네거리. 짐대거리. 감나무젱이 등과 같이 길거리의 성격이 짙은 땅이름도 그곳의 대부분이 마을의 안에 있거나 마을의 앞뒤와 더러는 주막거리의 뜻을 담고 있는 이름이므로 이 또한 마을이름의 범주에 넣어 처리하였다. 그리고 한 마을로 보기에는 그 규모가 작은 두가호듬. 세가호뜸. 구석뜸. 등도 사람이 사는 곳의 이름이라는 점에서 마을이름의 개념으로 처리하기로 한다.

  이에 부안군 1읍 12개 면 전부를 조사대상으로 하여 살펴보았지만 필자의 능력의 한계로 하여 누라 된 이름들도 있을 것이다. 미흡하지만 일차적인 자료를 겸하여 정리하여 놓는다면 뒷날 능력 있는 누군가가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다.

/김형주

김형주선생님은 1931년 부안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소재(素齋)이다. 전북대학교를 나와 부안여중, 부안여고에서 교사, 교감, 교장을 역임했다.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부안향토문화연구회와 향토문화대학원장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향토문화와 민속’, ‘민초들의 지킴이 신앙’, ‘부안의 땅이름 연구’, ‘부풍율회 50년사’, ‘김형주의 부안이야기’, '부안지방 구전민요-민초들의 옛노래', '속신어와 실아 온 민초들의 이야기'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전북지역 당산의 지역적 특성’, ‘부안읍 성안 솟대당산의 다중구조성과 제의놀이’, ‘이매창의 생애와 문학’, ‘부안지역 당산제의 현황과 제의놀이의 특성’ 외 다수가 있다.

그밖에 전북의 ‘전설지’, ‘문화재지’, 변산의 얼‘, ’부안군지‘, ’부안문화유산 자료집‘ 등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