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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냐? 나도 아프다!”
현장미술가 최병수
| 2008·03·20 01:08 |
  ▲ 여수 백야도 바닷가에 세워진 자신의 작품 앞에 선 최병수. 부산비엔날레에 내보였던 ‘은어’란 작품이다. 모든 생명체들에게 그에 걸맞는 자연을 돌려주자고 말하는 듯하다.  
ⓒ 김태성 기자




“최 작가님은 화가여요, 화백이어요 아니면 목수여요”라고 누군가 묻는 말에 문정현 신부가 그 대신 건넨 답은 “노가다지 뭐.”
그는 필요한 일에 몸이 먼저 움직이는 ‘노가다’ 기질을 타고났다. 실제로 중국집 배달원, 전기공, 웨이터, 막노동꾼, 보일러공, 목수 등 무려 19가지의 직업을 거치기도 했다. 화가 임옥상은 ‘노동자 최병수의 손’이란 작품을 만들곤 <…머리가 생각만 하고 도무지 움직이려 하지 않을 때도 너는 몸을 던져 궂은 일을 도맡아왔다>는 글을 붙이기도 했다.

현장미술가 최병수(48)다. 싸움의 현장 아닌 집 마당도 공사판 같기는 마찬가지다. 톱, 망치, 끌, 나무 무더기…. 그렇잖아도 비좁은 마당이 온갖 연장들과 작업 재료들로 가득 차 있다. 그에게 일상이란 작업 혹은 노동과 동의어이다.

그 연장들을 데불고 그는 이 땅 곳곳을 떠돌았다. 그곳은 평택이기도 했고, 새만금이기도 했고, 사패산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태안반도 바닷가이기도 했고, 해군기지가 들어선다는 제주 서귀포 강정마을이기도 했다.

그가 국토에 찍은 발자국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은 이 땅 곳곳이 파헤쳐지고 앓고 있다는 말이기도 할 것.

  
▲ 해군기지 건설 후보지인 제주 강정마을에 세운 연산호 솟대. 강정마을 앞바다는 연산호 등 해양자연문화유산의 보고이기도 하다.  

  
▲ 태안 만리포에 세운 작품. 기름을 뒤집어쓴 새의 고통이 전해진다. 뚫린 구멍 통해 보이는 건 바다, 하늘, 모래밭…. 더 큰 세상으로 눈을 틔워 준다.

찢기고 아픈 땅, 사람들의 눈물과 외침 있는 곳들이 지난 세월 동안 그의 ‘주소지’였다. 새만금갯벌을 지키기 위해 해창갯벌에 장승과 솟대를 세울 땐 간척사업으로 문을 닫게 된 김공장이 그의 집이었다. 마당에 서면 저만치 갯벌이 바라다보이는 그 집, 혹은 김공장은 부안 하서면 평지마을에 있었다.

“아무 데나 돌아다니는 사람이니까 앞으로 어디로 튈지는 나도 몰라”라고 말하는 그가 지금 머무르고 있는 곳은 여수 화정면 백야도. 이제는 다리가 놓여 배가 아니라 차를 타고 건너는 섬 아닌 섬이다. 남도 끝자락, 바닷가 한피짝. “워낙 변방에서만 살아온” 습관, 기질대로랄까. 폐교된 학교 앞의 작고 낡은 집. 허나, 손바닥만한 옥상이 바다를 다 품는 큰 집이기도 하다.

백야도에 와서 벌써 세 번째 겨울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2005년 12월, 위암 수술 후 이곳에  몸을 풀었다. 생애 처음으로 ‘일’보다는‘쉼’을 위한 집에 들었다.
“아는 후배 따라 여수 여기저기를 둘러보게 됐는데 한겨울인데도 밭에 배추가 푸르고 싱싱하더라. 그게 어찌나 좋던지.”

수려한 풍경들 다 놔두고 마음에 들어와 박힌 건 푸르고 싱싱한 배추였다. 지치고 아픈 몸으로 본 초록의 기운, 생명의 기운이 그를 이 곳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 전라도닷컴

찢기고 아픈 땅, 눈물과 외침 있는 곳 주소지 삼아

중환자실에 누워 있을 때도 그는 작업을 계속 했다. “약속했던 거니까….” 우직한 미련스러움이랄까. 하지만 그에겐 절박했다. 평택 미군기지 반대 싸움이 한창 진행되던 때였다.
그게 그가 살아온 방식이다.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도 않고, 안락에도 굴하지 않고.
최근 작업은 기름유출 사고현장인 태안반도에서 이뤄졌다.

온갖 바다생명들을 담아낸 작품들의 제목은 ‘오지 마!’. 절체절명의 외침. 철판 자르고 뚫어 기름을 뒤집어쓴 새, 울부짖는 새를 표현했다.

누구는 그를 ‘영정을 그리는 80년대의 상주(喪主)’라고 표현했다.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걸개그림과 이한열 영정으로부터 시작된 상주 역할은 어쩌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이땅 곳곳에서 사람의 욕심이나 문명의 야만에 의해 죽어가는 자연 속 뭇생명들의 상주(喪主).

태안 바닷가에 세워진 새든 꽃게든 세부를 생략하고 윤곽선만 거칠게 간략하게 표현했다. 그 단순함 속에 극적인 힘이 응축돼 있다. 뚫린 구멍 통해 보이는 건 바다, 하늘, 모래밭…. 자연을 향해 창을 내듯. 작품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더 큰 세상으로 눈을 틔워 준다. 그 생명체들에게 진정으로 돌려줘야 될 것이 무엇인지를,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도 한다.

평택 대추리 미군부대 앞논에 세워졌던 <지옥의 묵시록>이나 <대추리 아메리카>처럼 대추리 작업에서부터 그런 작품들이 많이 늘었다.  
“투시해서 보라는 의미다. 정말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것들을.”
태안에서 작업하면서 그를 분노케 한 건 더 있었다.

“‘눈가리고 아웅’은 그곳에도 있더라. 유화제를 엄청나게 뿌려대서 일단 눈으로 보면 바다는 깨끗해지고 푸르름을 되찾은 듯 했다. 하지만 유화제가 바다를 얼마나 더 오염시키는지 진실은 감춰진 채다. 원인이나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은 뒷전이고 기름 독 먹으며 땀흘리는 이들의 모습만 감동 드라마처럼 소비하는 한 우리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직시하고 성찰할 기회를 가질 수 없다.”

  
▲ ‘지구반지’ 작품 중 하나. 우주에 떠 있는 거대한 지구반지 안에 당신은 누구를 ‘주인’으로 넣고 싶은가.
ⓒ 전라도닷컴


욕망을 막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밑빠진 독’

자연문제나 환경문제나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되는 일. 인간의 욕망, 자본의 욕망을 막지 않으면 새만금이든 뭐든 밑빠진 독에 끊임없이 물 붓기 같은 일이 돼버린다고 그는 말한다.
“물질세계와 정신세계의 균형을 상실한 채 너무나 물질로만 쏠려가는 현실은 밑빠진 독과 다를 바 없지.”

부안에 머물며 새만금 작업을 할 때 ‘밑빠진 독’을 소재로 한 일련의 작품도 만들었다. 깨진 항아리에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들어앉힐 것인가를 묻는 작품이었다.
남들이 통장 불리고 집 평수 늘리는 동안 빈 몸 빈 주먹으로 떠돌며 이 땅 위에 싸움의 무기, 혹은 희망의 표지들만 늘려온 게 그의 삶. 그는 소유나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까.

“아니. 나라고 용가리통뼈인가. 왜 욕심이 없겠어. 그저 맨날 마음 닦는 수밖에 없지. 스무 살 때부터 ‘하루 지키기’라는 걸 해봤어. 아침에 마음먹은 것을 하루동안 지키기야. 근데 잘 안돼. 석 달 넘어서니 조금 되더라고. 그게 참 근사하대. 이제 ‘이틀 지키기’를 해봤지. 그것도 꽤 오래 걸리대. 근데 자꾸 하다보니 속도가 붙더라고. 그러다 보니 앞날을 계획할 수 있게 돼. 마음에 휘둘리지 않고 마음을 부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는 거지.”

자주 쳐다보며 마음 바로잡는 작품이 있다. ‘인욕선어’. 부처님의 전생과 관련된 이야기 ‘인욕선인’(忍辱仙人)에서 떠올린 작품. 살을 다 발리운 채 뼈만 남은 몸으로 풍경에 매달려 한소식 전하는 물고기다.

“우리들 먹고사는 식생활에서 얼마나 많은 인연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인지. 화내지도 원망하지도 않고 그렇게 묵묵히 변화되어 사라지고 있는지. 어느 날 보니 내 몸을 이루는 것이 자연의 조각조각이더라구. 나 죽으면 바다에 던져주라고 말하곤 해. 그동안 고기들이 내 밥이 되어주었으니 죽어선 내가 고기밥이 되어주는 게 온당하겠다 싶어서.”

내 몸과 살과 삶이 다른 생명들에 빚지고 있다는 말이다. 한데 이어져 있다는 말이다. 그런 눈으로 보니, 학의 부리에 물려 있는 물고기가 웃고 있는 작품도 나왔다. “섭생이 없으면 하늘과 땅 이어지는 솟대를 볼 수 있을까. 섭생을 통해 우주만물이 한몸이 되더라. 세상 생명들이 모두 인욕선인이더라. 그렇게 다 한몸이다 생각하면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는데….”


▲ 한미FTA는 ‘잘못 낀 단추’라고 말하는 작품.
ⓒ 전라도닷컴



▲ 지구온난화 위기를 경고하는 얼음 펭귄의 슬픈 여행.
ⓒ 전라도닷컴


지구 온난화문제를 경고하는 얼음펭귄

‘다 한 몸’이라 생각하는 그 마음 있어 ‘네가 아플 때 나도 아프다’.
“아프냐? 나는 안 아프다!”는 소통 불가능한 세상.
그의 대표작중 하나인 얼음펭귄은 뚝뚝 녹아 떨어지는 얼음물로, 아니 ‘눈물’로 말을 건넨다.
그가 처음 얼음펭귄을 선보인 것은 지난 1997년 지구 온난화문제를 다룬 교토 회의 때.

2002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리우+10 세계정상회의 행사장 앞에서도 얼음펭귄을 볼 수 있었다. 펭귄의 목에는 ‘남극의 대표’라는 푯말이 걸려 있었다.
‘남극의 대표’는 “우리는 이렇게 녹아가고 있다!”고 온몸으로 말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펭귄들을 깎아왔던 것일까. 지구 생태문제를 다루는 자리가 있으면 어디든 달려가 펭귄을 깎아 지구 온난화 위기를 경고하고 호소해 왔다.

그 얼음펭귄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진 동영상도 있다. 도시로 온 펭귄이다. 공장 굴뚝 앞에 선 펭귄, 자동차들 질주하는 대로에 선 펭귄, 휘황한 불빛과 높은 빌딩들 앞에 선 펭귄…. 펭귄의 ‘슬픈 여행’은 이제 멈춰져야 한다는 작고도 낮은, 그러나 강력한 목소리.
그는 ‘반지주인 찾기운동’도 오래 전부터 벌이고 있다. 다름 아닌 ‘지구반지’.

우주에 떠있는 거대한 반지의 동그라미 안에 무엇이 들어가야 가장 어울릴까. 북극곰? 고래? 갯벌? 아이들? 아름다운 지구를 꿈꾸게 하는 반지다. “처음 반지를 스케치해 놓고 보니까 사람들이 이 반지를 낄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 나부터서도 이 반지를 낄 자격이 있는 걸까 싶었어.”


▲ '정치식당-돈탕' 좋아 하시나요?
ⓒ 전라도닷컴


“최병수 일이 없어져야 세상이 제대로 굴러가는 것이겠지”

김진송은 《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란 책에서 “환경운동걸개사업에 관해서라면 최병수는 독점기업”이라 했다. 그건 돈 벌어들이는 독점은 아니다. 북한산 관통터널을 막기 위해 망루 세워놓고 싸울 때처럼 때로 ‘후미진 곳에서 소리 소문없이 당할 수도 있는’ 위험을 감당하는 독점이다.
“최병수 일이 없어져야 세상이 제대로 굴러가는 것이겠지.” 스스로도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그의 일이 없어질 세상이 쉬 올 수 있을까. 당장 한반도 대운하문제만 해도 그렇다.
그는 한반도 대운하를 한마디로 ‘한반도 난도질’이라 표현한다. 더 간단하게는 ‘한반도 살해’. 그래서 한반도 지도 위에 물길 따라 붉은 피를 철철 흘려넣었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

새만금이든 대추리든 현실 속에서는 패배라 할 싸움을 거듭 해오면서 지치지는 않을까.
“쉽게 마음 처지지 말아야지. 패배라고는 생각안해. 최소한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에게도, 앞으로 올 세대에게도 ‘왜 저항했는가’ 생각할 거리는 될테니까.”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보고 싶었던 것’. 그가 현장미술을 지속해온 가장 밑바닥 이유는 그렇다. 아픈 세상에 눈감지 않고 함께 마음을 나누기.
90년에 처음 만든 장산곶매 판화만 하더라도, 2000년대에도 유효하다. 여전히 찾는 이들이 많아 다시 찍어내곤 한다.

  
▲ 요새 작업중인 나무 부처. “부처님한테 호되게 당하고 있는 중이야. 처음엔 부처님 얼굴에 욕심이 덕지덕지 묻어 있더라구. 그게 다 내 마음이었겠지. 마음이라도 제대로 다스려놓고 깎아야 하는데….”
ⓒ 김태성 기자


백기완 선생이 장산곶매를 두고 그에게 해주었던 이야기가 있다. 장산곶매는 멱치기를 떠나기 전날 밤 ‘딱딱’ 부리질을 한다는 것. 자기 둥지, 자기 집을 까부수는 것이다. 왜냐하면 멱치기를 떠날 때는 목숨을 걸어야 되니까. 멱치기는 자기보다 약한 짐승을 잡아먹는 사냥이 아니라 못된 놈, 힘이 세다고 남을 괴롭히는 놈하고 목숨 걸고 싸우는 것을 말한다.

자기 집에 대한 애정, 그리움, 집착 같은 것을 갖고 있으면 온몸으로 멱치기를 할 수 없으므로 자기 집을 부수고, 싸우러 떠나는 장산곶매. 고난과 핍박에 굴하지 않는 기상 지닌 장산곶매는 지난 시대 저항의 한 상징이었다.

둥지를 떨치는 장산곶매처럼 그도 자기 것으로 갖지 않은 것들이 있다. 어쩌면 결혼이나 가정도 그렇다. “처자식과 함께 살면서 이런 일들을 감당할 자신은 없더라구.”
이라크 반전평화팀에서 이라크에 가자 했을 때 더 생각할 필요도 없이 훌쩍 갔던 이유도 다만 그렇게 말한다. “나는 혼자잖아?”  


▲ 그가 먹고 자는 방. 권정생 선생을 새긴 판화도 보이고, 상처입은 고래가 뭇생명들을 태우고
우주를 떠도는 작품 ‘우리는 당신들을 떠난다’도 보인다.
ⓒ 김태성 기자


“돈 벌다 죽자는 것이 노선일 수는 없지 않나”
<최루탄 뿌연 80년대 우리 등 뒤에/ 의연하게 걸려 있던/ 걸개그림처럼 항상 현장에 서 있던 최병수…>
그가 위암으로 쓰러져 투병할 때 열린 최병수를 위한 모임의 포스터에 적혀있던 글 중의 일부다.
걸개그림처럼 항상 현장에 설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답은 “내 맘에 안드는 꼴은 못보는 거지.” 덧붙이는 말은 “근데 내가 싸움 건 적은 한 번도 없어. 세상이 먼저 싸움을 걸어왔지.” 그는 싸움을 피하지 않았을 뿐이다.

‘시장경제라는 새빨간 거짓말’ ‘여수 외국인수용시설 화재참사-밀린 임금 700만원 받으려다…’ ‘핏빛 이라크 저항세력 250여 명 사살’….
그가 먹고자는 방의 한쪽 벽엔 그런 신문기사들이 오려붙여져 있다. ‘네가 아플 때 나도 아픈’ 마음을 거기서도 본다.

탐욕과 꿈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세상에 그는 “돈 벌다 죽자는 것이 노선일 수는 없지 않나”라는 말을 건네는 사람이다. ‘바벨탑을 꿈꾸기 전엔 나무가 하늘을 보게 했답니다’라는 자신의 작품처럼 나무가 하늘을 보게 하는 세상을 바라는 마음으로.

/남신희 기자  

기사출력  2008-03-17 18:13:35    
ⓒ 전라도닷컴    

이 기사는 전라도닷컴에서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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