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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벌러 가세 칠산바다로 돈벌러 가세’
2013년 위도띠뱃놀이 공개행사
| 2013·02·13 15:46 |
2013년 위도띠뱃놀이 공개행사ⓒ부안21


음력 정월 초사흘인 12일, 위도 대리 마을 앞 광장(부두)에서는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중요무형문화재 제82-다호 위도띠뱃놀이(보존회장 장영수)’가 마을 주민들과 부안의 각 기관, 전국의 언론, 민속학 연구자들, 그리고 이 행사를 보기위해 위도를 찾은 관광객들의 참여 속에 공개행사로 성대하게 열렸다.

위도띠뱃놀이는 조금례, 안길녀 무녀의 타계 이후 무녀의 부재로 여러 애로를 겪었으나 올해엔 위도 대리 주민이 된 작은 만신(안병희)을 얻게 되어 대리 주민들은 매우 고무되어 있었다. 반면에 지난 해 부터 예능보유자 김상원 선생이 몸이 불편해 원당에 오르지 못해 예능보유자 이종순 선생의 주도로 원당제가 치러졌다. 한편, 올해부터는 위도띠뱃놀이 본존회에서 도입한 마이크가 원당에서 굿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마을에 알려 현장감이 돋보였다.

‘돈벌러 가세 칠산바다로 돈벌러 가세’
위도가 조기어장으로 성시를 누리던 시절,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위도 곳곳에서는 풍어를 기원하는 마을공동제(共同祭)가 성대하게 치러졌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서면서 조기가 칠산바다에서 자취를 감추자, 지금은 예전의 그 화려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멸치잡이와 김양식 등을 주업으로 겨우 어촌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성대하게 치러졌던 풍어제도 그 맥이 끊기거나 간략해졌는데 대리(大里)마을의 '띠뱃굿'만은 유일하게 원형을 잘 간직한 채 그 맥을 잇고 있다. 1978년 춘천에서 열린 제19회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영예의 대통령상을 받아 부안의 귀중한 민속유산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고, 1985년 ‘위도띠뱃놀이'라는 이름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82-다호로 지정되었다.

위도띠뱃굿은 음력 정월 초사흗날 이른 아침부터 해질 무렵까지 어부들의 삶 속에서 녹아 있는 소리와 풍물, 신명난 춤을 추며 축제분위기로 이어진다. 원당(願堂)에서 지내는 원당제, 마을의 主山돌기, 바닷가의 용왕제와 띠배에 액을 띄워 보내기 순으로 진행되는데, 산, 마을, 바다 등 마을 전체가 제의(祭儀)의 공간이 된다. 마을의 안태와 풍농을 기원하며 지내는 육지 당산제의 성격과 같은 이 제의는 풍어기원의 깊은 신앙성과 술배소리, 애용소리, 가래질소리 등의 뱃노래와 술과 춤이 따르는 놀이가 결합된 마을 축제로서 더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정월 초사흗날, 날이 밝으면 영기를 든 기잡이를 선두로 제관, 무녀, 그리고 제물을 짊어진 화장, 선주, 그 뒤를 따라 10여 명의 굿패가 흥겹게 굿을 치며 뒤따르고, 오방기와 뱃기를 든 기수와 마을사람들이 그 뒤를 따라 원당에 오른다.


원당 오르기ⓒ부안21


원당굿ⓒ부안21


원당굿에서 ‘굿 한 석 끝남을 알리는 사물굿’ⓒ부안21

대리마을 원당은 칠산바다가 발아래 내려다보이는 마을의 동남쪽 뒷산인 당제봉(해발 200 여m) 정상,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있다. 이 당집이 언제 지어졌는지 문헌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벽에 ‘大猪項重修序’라는 현판이 걸려있는데 글자의 퇴색이 심하여 이마저 알아볼 수가 없다. 마을 노인들에 따르면 옛조상들이 이 마을에 정착, 어업을 주업으로 하여 살면서부터 堂神을 모셨을 것이라고 한다.

원당의 당신은 모두 12서낭이라고 말하고 있으나(이에 대해 정확히 아는 이는 없다. 그러나 무녀의 사설 중에는 ‘열두 서낭 앞에 인사를 드리는 굿’이 있다.), 당집 안에는 모두 10位의 서낭이 모셔져 있다. 최초로 堂집을 지었던 당주(堂主)를 신으로 섬겨 11서낭이 되는 셈이나 그렇더라도 12번째 서낭 명칭이 불분명하다. 원당의 북벽에는 왼편으로부터 ‘원당마누라’, ‘본당마누라’, ‘옥저부인’, ‘애기씨’의 네 서낭이 걸려 있으며, 동벽에는 북쪽으로부터 ‘물애기씨’, ‘신령님’, ‘산신님’의 세 서낭이, 서벽에는 ‘장군님’이, 그리고 좌우 문에는 수문장격인 ‘문수영대신(한쌍)’이 각각 모셔져 있다.

원당 안에 모셔진 제신(諸神)에 대한 내력이나 신격, 그리고 역할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당집의 이름이 원당이고, 또 여러 서낭 중 1년 동안 배에 모실 서낭을 내리는 깃굿 과정에서 선주들이 무녀로부터 깃손을 받을 때 제일 많이 내림받기를 원하는 서낭이 원당마누라, 본당마누라, 장군서낭, 애기씨서낭 순인 것으로 볼 때 이 원당의 주신은 원당마누라로 여겨진다.


옛문서/위도띠뱃굿은 예부터, 그리고 아주 성대하게 치러졌다. 위의 문서에서 말해주듯, 충청, 전남, 고군산도, 비응도 등지에서도 참여했음을 말해주고 있다.(자료제공/서주원).ⓒ부안21

“기도가 있으면 반드시 응답하니”
대리 원당은 위도 뿐 아니라 서해안 지역에서 역사가 깊고 영험하기로 소문난 당이다. 특히 서해안 지역에서 조업하는 어민들이나 칠산어장을 오고가는 어민들에게 대리 원당은 매우 절대적인 존재였다. 이들은 원당 앞을 지날 때면 가던 길을 멈추고 원당에 올라 제를 지내거나 배 위에서 예의를 갖춰 고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원당이 칠산어장을 관장하는 신앙처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리 원당이 칠산어장을 관장했을 가능성은 위도면 대리 서진석씨 집안에 전해오는 「원당중수기(願堂重修記)」의 내용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중수기에는 원당 중수 때 돈을 기부한 어민들 가운데 가까이는 위도와 부안을 포함한 전북 지역, 멀리는 충남, 전남, 황해도 등 각지의 어민 이름이 보인다. 이를 통해 대리 원당은 서해안 지역의 어민들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신앙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원당중수기 서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문서를 작성한 해인 ‘庚子’는 1900년이다.)

“돌아보건대, 무릇 대저항리의 원당은 큰 바다의 험준한 봉우리 위에 위치하여 신령스럽고 기이한 기운이 특별히 이곳으로 모여들어, 사람들이 모두 우러르고 숭배합니다. 堂神이 신령하여 □…□기도가 있으면 반드시 응답하니, 8도 沿路에 있는 큰 □…□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어 □…□, 모두들 그(堂神의) 그윽한 가호를 받아서 재물이 크게 번성하였습니다. 향과 예물을 올려 축원하기를 누가 정성껏 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원당을 세운지가 이미 오래되어 비바람이 새고 스며들어 보수하여 고치는 것이 시급한데, 財力이 넉넉하지 못하여 마음속의 경영한 바를 괴롭게도 (실현할) 좋은 방도가 없습니다. 원컨대 각처의 크고 작은 배 여러분들께서 특별히 함께 구제할 의리를 생각하시어, 각각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내어서 마땅함에 따라 도와주시어, 이 원당을 일신할 수 있게 한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경자(庚子)년 3월  일/蝟島都執綱 이인범(手決)/化主 김기서, 서익겸, 이석겸, 신득삼, 백윤서, 백자천, 김치경, 김태서”


용왕굿ⓒ부안21


용왕굿 중 용왕에게 회식밥 주기ⓒ부안21


떠 날 채비를 마친 띠배ⓒ부안21


떠나가는 띠배ⓒ부안21

‘만선일세 만선일세, 조기 실어 만선일세’
원당에서 내려온 마을사람들은 영기와 오방기를 앞세우고 굿을 치며 마을을 돈다(주산돌기). 주산돌기가 끝날 시각이면 바닷가 선창에는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만든 폭 2미터, 길이 3미터 정도의 띠배가 먼 바다로 떠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대리’라고 쓴 마을 기가 꽂혀있는 띠배에는 돛대, 닻, 그물, 뱃기,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 선장과 선원 등이 실려 있는데, 허수아비의 남근을 과장되게 크게 표현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풍요, 다산의 성 신앙을 담은 것이다.

용왕제는 이 띠배 앞에서 지낸다. 무녀가 ‘여러 사람들 바다를 향해 재배!‘하면 마을사람들이 일제히 바다를 향하여 절을 한 후, 농악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띠배 주위를 빙빙 돌고, 무녀는 사설과 춤을 추며 제를 올린다.

용왕제를 지낸 후에는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띠배 띄워 보내기’를 한다.  ‘가래질 소리’를 흥겹게 부르며 띠배에 용왕님이 먹을 회식밥을 퍼 담은 후, 띠배를 모선에 연결시키고, 굿패와 선주가 모선에 올라 "돈 벌로 가세 돈 벌러 가세 칠산바다로 돈 벌러 가세(배치기소리)‘를 우렁차게 부르며 띠배를 끌고 먼 바다로 떠나간다.

마을의 재액을 모두 싣고, 풍어의 꿈도 가득 싣고 떠나가는 띠배를 향해 마을사람들은 ‘우리 마을 사고 없이, 우리 배도 사고 없이, 만선일세 만선일세, 조기 실어 만선일세..., ’하며 풍어를 기원한다.

/허철희 huh@buan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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