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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 아닌, 대안학교 같은 학교’
우리는 행복한 학교를 꿈꾼다, 하서초등학교
| 2016·03·16 06:12 |
▲ 하서초등학교


학교에서 매일 벌어지는 일상

“쌔~앰, 일로 한 번 와 보세요. 빨리요!”
아직 책가방도 풀지 않은 2학년 꼬맹이 몇 명이 아침부터 꽃사과 나무 밑에 쭈그리고 앉아 다급하게 나를 부른다. 호기심에 이끌려 가보면 그곳엔 땅에서 막 파낸 듯한 풍뎅이의 유충이 꿈틀대고 있다. 비위가 약한 어른들은 단번에 ‘으윽~’ 하며 인상을 찌푸리겠지만, 아이들에게 이것은 하루의 귀중한 소일거리이다. 애벌레 입장에서는 참으로 안 된 일이나 애벌레는 하루 종일 아이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더없이 좋은 관찰 대상이 될 것이다.
도시 학교에서는 절대로 상상할 수 없는 이런 풍경이 우리 학교에서 벌어지는 매일의 일상이다. 어른들이 70~80년대를 회상하며 ‘나 어릴 적에는...’ 하며 말할 법한 개구리 잡기, 나무 타기, 꽃반지 만들기 등의 놀이를 우리 아이들은 지금도 진심으로 즐거워하고 있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때 묻지 않은 천진난만함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미소는 내가 6년째 이 학교에서 근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안학교 아닌, 대안학교 같은 학교’

읍내에서 하루에 몇 차례 안 되는 버스를 타고 청호 마을에서 내려 10분 정도 좁은 시골 길을 걷다 보면 높다란 나무들 사이로 하서초등학교의 교문이 보인다. 학교가 외진 곳에 위치해 처음 오는 사람은 길을 헤매기 십상이다. 보이는 것들은 넓은 논과 밭뿐이요, 그 흔한 구멍가게 하나 없어 학교의 위치는 말로 설명하기보다 “내비게이션을 검색해보세요”라 하는 것이 훨씬 편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밤에는 가로등 불은커녕 주변에서 새어 나오는 형광등 불빛조차 없어 그림자도 없이 홀로 걷는 시골 밤길의 고즈넉한 정취가 물씬 풍겨날 정도이다.
하서초등학교는 부안의 면소재지 대부분의 학교가 그렇듯 전형적인 농촌 소규모 학교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전교생은 22명으로 정식 인가 4학급의 작은 학교이다. 정식 교원은 교장선생님을 제외하고 5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내가 처음 이곳에 부임한 2010년엔 전교생이 12명, 그 다음 해엔 9명까지 줄었으니 지금의 전교생 숫자가 결코 적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교직원, 학부모를 포함한 우리 학교 교육 가족들은 다시 늘어난 지금의 학생 수에 무한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본래 하서초등학교는 1940년에 개교한, 나름대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학교였다. 한때는 전교생이 수백 명에 이를 정도로 번창했다. 학교 중앙 현관에 자리한 낡은 트로피에는 지금도 ‘교육감기 쟁탈 핸드볼대회 우승’이라는 문구가 선명하고, 언제 고장난지조차 모르는 낡은 스피커에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아무개 증’이라는 글씨가 여전히 남아 우리 학교에도 전성기라는 것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


▲ 전교생이 떠난 제주도 수학여행


▲ 텃밭에서 직접 기른 토마토를 들고 기뻐하는 아이들


그러나 농촌이 쇠락해 가면서 지역 사회의 인구는 점차 줄어들고 우리 학교 역시 차츰차츰 학생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지역에 남은 학부모들은 작아질 대로 작아진 마을 학교의 입학을 꺼려했다. 학교에 남아있는 아이들은 끝까지 지역 사회를 지키고자 노력하는 가정의 자녀들뿐이었다. 지난 2011년, 결국 우리 학교는 부안 관내에서도 가장 규모가 작은 학교가 되었다.
그러던 우리 학교 학생수가 2012년을 기점으로 다시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2012년 14명, 2013년 19명, 2014년 26명으로 학생 수가 늘어난 것이다. 올해는 졸업생에 비해 입학생이 적어 학생 수가 다소 줄기는 했으나 원래 학구 내에 입학대상자가 0명이었던 데다가 입학생 전원이 외부에서 입학신청을 해온 아이들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 정도의 규모를 유지하는 것도 감사할 일이다.
이렇게 학생 수가 증가한 데에는 아이들에 대한 교사들의 순수한 열정과 학부모들의 전폭적인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배움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무던히 노력했고, 작은 우리 학교에 맞는 교육과정을 실천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학부모들은 교사들의 이러한 노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인정해 주었다. 기본적으로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생각하는 교육에 대한 관점과 철학이 비슷했다. 대학 입시가 학교 교육의 모든 것을 차지하여 초등학교에서조차 성적지상주의가 만연하고 성적에 의한 줄 세우기가 팽배한 요즘, 순수한 배움의 기쁨과 순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교육을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꿈꾸며 이야기하는 것은 대단히 즐겁고 행복한 일이었다.
학부모들은 우리 학교의 몇몇 사례들을 대단한 미담이라도 되는 듯 주변에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학교의 학생 수가 증가하게 된 단초가 되었다. 학교 차원에서는 학생 유치를 위해 제대로 된 홍보 활동 한 번 해본 적이 없었다. 사실 교사 입장에서 학생 수가 많고 적은 것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단지 주어진 환경에서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것이 학생 수가 증가하는 데에 더없이 훌륭한 홍보활동이 되고 말았다.
실제로 현재 우리 학교에 재학 중인 아이들의 반절 이상은 학구 외에서 다니고 있는 아이들이다. 해마다 학구 외에서 입학 신청을 해오는 아이들이 있었고, 학기 중에도 전학 상담을 해오는 학부모들이 여럿 있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자녀 교육에 대한 고민과 아픔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우리나라 교육 모순의 대안을 찾고자 하는 갈망과 바람도 있었다. 학교는 기본적으로 지역사회의 아이들을 위한 것이지만, 우리 학교는 여러 곳에서 모인 이러한 갈망과 고민들이 한데 어우러져 지금의 인위적인 모습을 만들어냈다. 한때 유행했던 대중가요의 가사를 접목시켜 표현해보자면 ‘대안학교인 듯, 대안학교 아닌, 대안학교 같은 학교’가 지금 우리 학교의 모습인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매일 매일을 다르게 살아간다

우리 학교에는 다른 학교에 없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바로 수업과 쉬는 시간을 알리는 시종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 학교에 새로 온 선생님들은 이 사실에 굉장히 놀라워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우리 학교에서 몇 달 근무하다 보면 이것이야말로 작고 자유로운 우리 학교의 모습을 설명해주는 단적인 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업과 쉬는 시간의 경계는 오로지 담임교사의 재량으로만 이루어진다. 기본적으로는 40분 수업에 10분 쉬는 시간을 유지하나, 수업의 내용, 아이들의 수준, 또한 그날그날의 특별한 사정에 의해 얼마든지 변경될 수 있다. 이러한 사소한 문화가 수업을 구성하는 교사의 역량을 키워주고 학생들이 수업에 몰입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준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그러나 최소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아이들에게 자유와 여유로움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다. 때로 쉬는 시간이 다른 아이들이 복도를 돌아다니며 창문 너머로 우리 반 수업하는 모습을 장난스런 표정으로 엿보기도 하지만, 그저 웃어넘기면 그만이다. 규모가 큰 학교에서는 다른 반 수업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꿈도 꿀 수 없지만, 작은 우리 학교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오후 5시가 되면 일제히 스쿨버스로 하교한다. 수업이 끝나면 각종 학원들로 뿔뿔이 흩어지는 일반 학교들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하교 시간 전까지는 학교의 모든 곳이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다. 날씨가 맑은 날엔 풀숲을 헤치고 사마귀를 잡으러 다니며, 비가 오는 날엔 바지와 신발이 다 젖도록 웅덩이를 참방거리며, 눈이 내리는 날엔 온갖 눈놀이를 하며 아이들은 매일 매일을 다르게 살아간다.
때로는 무턱대고 아무 벌레나 잡아와 교사들을 곤란하게 만들기도 한다. 교실에서 키워 본 것만 해도 사마귀, 개구리, 지렁이, 누에, 장수풍뎅이 등 고상한 것들과는 거리가 멀다. 여기에는 사실 관찰이고 학습이고 없다. 그저 아이들의 호기심과 만족을 채워 줄 뿐이다. 그래서 사실 대부분의 결말은 무관심 혹은 지나친 애정(?) 끝에 시달린 벌레들을 다시 놓아 주는 것으로 끝이 나고 만다.


▲송산효도마을에서 펼쳐진 봉사활동


▲ 방과 후의 학교는 아이들에게 놀이터가 된다



권위와 친밀 사이에서

그러나 이러한 무질서와 난잡함을 통해 우리 아이들은 성장하고 배운다. 자연이 주는 신비한 숨결은 그대로 아이들의 감성과 사고를 자극한다. 오감을 통해 자연과 교감하는 아이들은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줄 수 없는 풍요로움을 가슴 속에 간직하고 살아간다.
물론 안전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도 하다. 지금은 무상으로 제공되는 각종 방과후학교 프로그램과 전교생 돌봄교실 서비스로 아이들의 특기적성과 돌봄을 보완하고는 있지만, 안전에 대한 부분은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우리 학교는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의 관계가 친밀한 학교이기도 하다. 학생들이 교장선생님에게 자연스럽게 매달리고, 학부모는 교사들과 모바일 SNS 친구로 맺어져있다. 학생들이 교무실에 자연스럽게 들락거리며 선생님들의 티타임에 간섭하기도 한다.
때로는 이러한 관계의 모호함 때문에 교사 스스로 힘들어하기도 한다. 권위와 친밀 사이에서 교사는 때때로 상처 받고, 때때로 고민한다. 그러나 우리 학교 교사들은 잘 알고 있다. 진정한 권위는 말로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전문성과 인격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모든 수업과 교육 활동이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교사들은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기 보다는 아이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아침에 아이들을 만나면 종종 인사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먼저 하는 아이들이 있다.
“선생님, 선생님, 저 어제 솔레미오에서 스파게티 먹었다요~~”
“에이, ㅇㅇ아, 인사 먼저 해야지!”
“아, 맞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런 아이들을 만나면 권위를 무시당했다는 생각보다는 아무 말이나 편안하게 할 수 있는 대상자라는 사실에 반가움이 앞선다.


▲선생님 집에서 먹은 아이스크림의 맛은 왠지 더 특별하다


▲ 교내에서 해마다 실시하는 1박2일 야영은 모든 교육가족들의 축제와도 같다



‘우리가 꿈꾸는 학교의 모습은 무엇인가’

올해 우리 학교는 전라북도교육청이 지정한 혁신학교로 선정되었다. 자랑을 좀 하자면 사실 우리 학교는 이전부터 혁신학교보다 더 혁신학교 같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혁신학교’라는 타이틀에 욕심을 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의 좋은 분위기를 언제까지나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학교에 있는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사랑하고 교육에 대한 바른 철학을 가진 참교사라고 감히 자부한다. 이런 배울 점 많은 선생님들과 우연히 한 곳에 모여 같이 근무하게 된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자 축복이었다.
그러나 지금 학교의 분위기가 좋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교사들은 해마다 오고 나가지만 아이들은 학교에서 6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같은 생각과 철학을 가진 선생님들이 계속해서 우리 학교로 부임해오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혁신학교’라는 타이틀이 그러한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혁신학교를 지원하게 된 또 다른 이유로는 스스로를 더욱 다독이자는 의미도 있었다. 교사도 사람인지라 때로는 매너리즘에 빠지곤 한다. 우리 학교같이 해마다 전교생의 면면이 똑같은 학교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기에 혁신학교 지정은 우리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지지 말고 더욱 최선을 다하자는 다짐과도 같은 것이었다.
혁신학교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나는 특히 혁신학교를 ‘본질을 추구하는 학교’라고 생각한다. 학교의 본질은 무엇인가? 바로 ‘수업’과 ‘교육 과정’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동안의 학교들은 수업과 교육 과정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는 구조 가운데 있었다. ‘아이들’이 중심에 있기 보다는 공문과 잡무로 대표되는 ‘행정’ 중심의 학교 문화가 지금도 곳곳에 만연하다. 수업 잘하는 것보다는 공문을 잘 처리하는 것이 교사의 능력을 나타내는 척도가 되어버렸고 체육대회, 학예회 등의 이벤트성 행사 때문에 정작 중요한 수십 시간의 일상 수업들이 버려지는 일들이 지금도 학교에서 계속 되고 있다. 이러한 비본질적인 것들에서 벗어나 참된 배움과 성장이 이루어지는 학교다운 학교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지난겨울, 혁신학교 지정과 더불어 교사와 학부모들은 몇 날 며칠 머리를 맞대고 학교에 대한 상을 그려나갔다. 아주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부터 스스로 찾아나갔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나는 어떤 교사(학부모)인가’, ‘우리가 꿈꾸는 학교의 모습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들을 서로 던져보고 대답하며 생각들을 모아갔다.
이렇게 해서 모인 생각들은 ‘앎으로 삶을 채우고 나눔으로 성장하는 우리’라는 문구로 요약·정리되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그렇고 흔한 슬로건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 문구는 결코 허울만 좋은 간판이 아니다. 학생, 학부모, 교사 등 교육 가족들의 소망과 방향성이 담겨있는 살아있는 철학인 것이다. 학교에서 다루는 ‘앎’은 죽은 지식이 아닌 아이들의 ‘삶’과 연관 있는 지식이어야 한다. 또한 ‘삶’은 나 자신만의 것이 아닌 타인과 공동체의 선을 위한 ‘나눔’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 ‘나눔’이 결국은 자신의 진정한 ‘성장’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이 문구 안에 담겨 있다.


행복한 학교, 끝이 아닌 시작

그러나 혁신학교로 지정된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더 많은 시행착오들을 경험하고 있다. 좀 더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학교, 모든 교육 가족이 행복한 학교에 대한 우리의 꿈은 소박했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과정은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았다. 오히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고 험난해 보인다. 참된 지식과 삶에 대한 개념은 우리 머릿속에서조차 혼란스러워진다. 교육 가족이 늘어날수록 그에 따른 이해와 소통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대화의 과정을 반복하게 될지 아득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얻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소득은 하서초등학교에 사는 아이들과 교사, 학부모, 모두 자신의 삶과 교육의 본질에 대하여 더욱 진지한 배움과 성찰을 가져왔다는 점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혼란스러우면서도 이 길을 가고 있다. 나는 이러한 성찰의 힘을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학교를 꿈꾼다. 학교를 고민한다. 그리고 또 학교에서 하루를 살아간다.

/이동진(하서초등학교 교사)


<부안이야기 13호>에서 옮겨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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