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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사 비극의 희생자
독립유공자 경산(耕山) 최순환(崔順煥1911~1950)
| 2016·06·09 04:33 |
◀최순환 선생 생가에 60년 만에 ‘독립유공자의 집’ 문패가 걸렸다.


1911년 동진면 당상리에서 태어난 최순환은 한국현대사의 비극이 낳은 숱한 희생자들 중 한 사람이다. 그는 경성사립중등학교 재학 중 독서회 활동으로 퇴학을 당한 뒤 향리에 내려와 농민조합을 결성하는 데 참여했다. 이 때문에 일본 경찰에 구속되어 옥고를 치르고 치안유지법으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이때가 1934년 6월의 일이었다.

그 뒤 그는 농사를 지으며 최씨 문중 재각에서 후진교육과 야학 활동을 하였으며, 해방 후에는 지역교육에 헌신하고자 당오초등학교 설립후원회장이 되어 활동하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다. 한국전쟁 전후 한국사회는 보도연맹원이라는 수만 명의 민간인이 집단학살당했는데, 최순환 역시 그 사건에 연루된 것이다.


▲독립유공자 경산(耕山) 최순환(崔順煥) 선생 묘비 제막식(동진면 당상리 산66-1, 문래당산에서, 2012년 9월 8일)

보도연맹은 당시 좌익 활동을 하다 자수하거나 전향한 민간인들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관변단체로, 등록자가 전국에 6만 2,000여 명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부안군의 경우 1950년 1월 12일 군내 자수자 167명이 보도연맹 결성 선포식을 거행했다.

그러나 이들 170여 명은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몰살당했다. 1차로 7월 6일경 개암동 골짜기에서, 2차로 7월 19일경 줄포면 후촌마을 야산 골짜기에서, 3차로 여룬개 골짜기에서 학살이 이루어졌다.

학살자는 내무부 치안국과 전북지방 경찰국의 지시를 받은 부안경찰서 소속 경찰들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09년에 발간한 『전북국민보도연맹 사건 진실규명결정서』는 “일부는 적극적으로 좌익 활동을 했던 사람이었지만 대다수는 사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농민들이었고, 모두 비무장 민간인이었다.

당시 가해자는 희생자들의 불법 행위 등에 대한 확인 과정이나 사살의 법적 처리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다만 이들이 인민군에게 동조하여 후방을 교란할 것이라는 막연한 우려 속에서 장기간 구금하여 불법 사살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적고 있다.

최순환은 당시 3·22사건(1947년 3월 22일 부안에서 일어난 농민 총파업)과 관련하여 보도연맹에 가입된 상태였으며 느닷없이 끌려가 훗날 주민들이 ‘사십꼬라당’으로 부른 후촌 야산에서 마흔 살의 젊은 나이에 죽임을 당했다. 2010년 3월 1일 독립유공자로 건국포장을 받았다.


/고길섶(문화비평가)

<변산바람꽃 11호에서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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