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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아 솔아 푸른 솔아"
부안이 낳은 노동자 시인 '박영근'
| 2016·06·27 09:20 |
◀박영근 시인 4주기 추모문학제(2010년 5월 15일)가 그가 다녔던 (옛)마포초등학교에서 열렸다.


1980년대 ‘민중이 주인 되는 날’을 열망하며 운동권 사회에서 많이 부르기 시작해 대중화된 안치환의 노래 <솔아 솔아 푸른 솔아>의 원작자이자 노동자 시인, 그 이름은 박영근(朴永根, 1958~2006)이다. 그는 1958년 변산면(당시 산내면) 마포리 산기마을에서 태어나 한창 젊은 나이인 48세에 타계했다. 그는 교육열이 대단했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초등학교 5학년 때 집을 떠나 익산으로 옮겨 갔고 전주고등학교에 진학했으나 그것도 잠시, 1학년 때 박영근은 이미 『사상계』나 『창작과비평』을 읽었고 김지하, 고은, 황석영, 이호철 등을 알았으며, 교사들 사이에서는 ‘요주의 학생’으로 찍혀 결국 자퇴하고 만다. 그 후 문학을 하겠다는 꿈을 품고 상경생활을 하며 수많은 책들을 독파하고 시에 미쳤던 문학청년으로 성장하였다.

그런 그가 서울의 신정동 뚝방촌으로 흘러 들어간 것은 이 땅에서 힘들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민중의 실체와 마주치는 운명의 시간이었다. 땡볕과 삭풍이 되풀이되는 공장에서 고된 일에 시달리고 겨우 방 한 칸에서 끼니나 때우며 사는 노동자들이 있었던 구로공단 등지에서 노동자의 삶을 살았다. 구로공단은 1980년대 노동운동의 상징이었다. 문학청년은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1984년 대학가에서 널리 읽힌 첫 시집 「취업 공고판 앞에서」(청사)를 내는 것을 시작으로 뒤이어 「대열」(풀빛), 「김미순전」(실천문학사),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창비), 「저 꽃이 불편하다」(창비) 등의 시집들을 펴냈고, 산문집 「공장 옥상에 올라」(풀빛)와 시평집 「오늘, 나는 시의 숲길을 걷는다」(실천문학사) 등의 책들도 펴냈다. 그는 또한 1980년 시동인 『말과힘』 활동을 시작으로 민중문화운동협의회, 노동문화패 두렁, 민족문학작가회의, 인천민예총 등지에서 활동했고, 제12회 신동엽창작상과 제5회 백석문학상을 받았다. 일찌감치 고향을 떠났던 박영근은 1997년부터 다시 부안에 쳐들어오곤 하여 고향 친구들과  곰소, 변산, 해창, 계화도, 돈지 등지를 둘러보며 그 감회를 쏟아냈으니 그렇게 해서 나온 시들이 ‘변산기행’, ‘해창에서’, ‘바다에 내가 있다’, ‘물때’ 들이다. 시인의 타계 1주기에 즈음하여 유고시집 「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창작과비평사)가 출간되었다.

우리는 흔히 노동자 시인하면 「노동의 새벽」으로 유명한 박노해를 떠올리지만 박노해, 백무산, 김해화 등 노동자 출신 시인들은 박영근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그를 뒤따라 등장하였으며, 이들이 1980년대 한국사회의 노동문학을 꽃피웠다. 박영근은 1980년대 최초의 노동자 시인으로서 노동문학을 개척했다. 그러나 그의 시적 표현은 노동자정신으로서만 이념화된 게 아니라 “가장 서정적인 게, 가장 민중적이라는 진리”를 시로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박영근은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어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말씀을 시로 드러내는 것에 대해 매우 불편하다고 했고, 시를 쓴다는 것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세상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 즉 무엇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자신이 현실의 생생한 일부이기를 원했던 것이다. 박영근이 노동자 시인으로 위치하고 있으면서도 시 본래의 힘을 강렬하게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시에 대한 이러한 태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박영근은 가난한 시인이었다. 그러나 박영근에 있어서 가난함이란 결핍을 욕망으로 충만하게 하는, 1980년대와 1990년대가 두서없이 찾아 왔어도 좌절보다는 희망을 앞세우며 살도록 한, 힘의 근원이었고 문학적 화두였다. 부안을 노래할 줄 아는 부안 출신의 시인이었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한 노동시인이었고, 그 시적 형상화에 있어서도 탁월한 미적 감촉이 있었다.

/고길섶(문화비평가)

<변산바람꽃 11호에서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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