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이 보여요!
 
인터넷신문 www.buan21.com//기사제보
 

 
 
       
    뉴스  
     
    기획/연재  
    김형주의 부안이야기
정재철의 부안사람들
박형진의 부안타령
김길중의 오!변산반도
허정균의 부안일기
오!새만금
바라래 살어리랏다
고길섶의 부안여지도
위도이야기
변산반도국립공원
부안을 노래한 시/글
 
    사설/칼럼/기고  
    부안여행  
    부안 역사기행
부안 생태기행
부안 맛기행
부안사는이야기
그곳에 가고싶다
 
   


"천층 산 위에 그윽이 천년사가 서 있어"
이매창 "천층암에 올라서"
| 2017·05·10 22:14 |
가마소 가는길에 만나는 안주봉, 고 청림사 터 북쪽에 있다.ⓒ부안21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 이매창은 가녀린 여성의 몸으로 변산의 높은 곳에 있는 절마다를 올라 시 한 수씩을 남겼다. 변산 제2봉인 쌍선봉 산상에 있는 월명암, 어수대 위에 있었던 왕재사, 또 천층 산 위 바위가 갈라지고 돌이 포개져서 나무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밖에 없는 곳의 절벽에 붙어 있었던 천층암을 오른 것이 그것이다. 아래는 그녀가 천층암에 올라 지은 시이다.

登千層菴/천층암에 올라서

千層隱佇千年寺/천층 산 위에 그윽이 천년사가 서 있어
瑞氣祥雲石逕生/상서로운 구름 속으로 돌길이 났어라
淸磬響沉星明白/맑은 풍경소리 스러지는 속에 별빛 달빛만 밝은데
萬山楓葉뇨秋聲/산이란 산마다 단풍이 들어 가을소리가 가득해라
-허 경진 역-


그런데 천층암이 변산 어디에 있었던 암자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부안현(扶安縣) 조에 천층암에 대한 기록이 보일 뿐이다. 허지만 그 당시와 지금의 지명이 달라 그 정확한 위치를 가늠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아래는 『동국여지지』 천층암에 관한 기록이다.

“청림사(淸臨寺)는 변산 청연동(靑淵洞)에 있다. 절 뒤 산 위에 또 청연굴(淸淵窟), 천층암(千層庵)이 있는데, 암자는 절벽에 붙어 있다. 바위가 갈라지고 돌이 포개져서 나무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밖에 없는데, 그 위와 아래가 헤아릴 수 없이 깊은 산골짜기이다. 또 본래의 청림사(淸臨寺)가 있는데, 옛날에 큰 절이었으나 지금은 없어져서 그 터만 남아 있다.“


전라북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개암사 지장전에 모셔져 있는 청림사석불좌상, 1990년대 초까지만해도 가마소 가는길, 고청림사 터에 있었다.ⓒ부안21

청림사(淸臨寺)를 소개한 대목으로 변산 청연동에 청림사가 있고, 천층암은 이곳 청림사 뒤 산 위 바위가 갈라지고 돌이 포개져서 나무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밖에 없는 곳의 절벽에 붙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매창의 싯귀처럼 천층 산 위에 있는 절과 맞아 떨어진다.

참고로 동국여지지는 반계 유형원(광해군14, 1622~현종 14, 1673)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전국 지리지로 내용을 보면 현종(1660~1674) 때까지의 사실이 포함되어 있다. 이매창이 만력 계유(1573)에 나서 경술(1610)에 죽었으니 동국여지지가 만들어진 시기라면 천층암은 아직 존재했을 것이기에 그곳에 오르고, 또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청연동(靑淵洞)은 또 어디인가? 청연동을 찾으면 청림사와 천층암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동국여지지에 청연동의 기록도 보인다.

“청연동(靑淵洞)은 변산 가운데에 있다. 뾰족뾰족한 산봉우리들이 떼 지어 둘러싸고 시내와 폭포가 못을 이루었는데, 그 깊이를 알 수 없으며, 돌 위에 넘쳐흘러 자리를 깐 것처럼 평평하다. 세상에 전하기를 용이 못 가운데 숨어 있다하며, 가물면 여기서 기우제를 지낸다. 그 상류에 또 화룡연(火龍淵)이 있고, 그 북쪽 1리쯤에 큰 바위가 있는데, 깎아 선 것이 천 길이나 되어 기어오를 수 없으므로 이름을 학암(鶴岩)이라 했는데, 옛적에는 학의 둥우리가 그 위에 있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청연동의 위치는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뾰족뾰족한 산봉우리들이 떼 지어 둘러싸고 시내와 폭포가 못을 이루었는데, 그 깊이를 알 수 없으며, 돌 위에 넘쳐흘러 자리를 깐 것처럼 평평하다. 그 상류에 또 화룡연(火龍淵)이 있다.” 는 대목은 가마소계곡을 가 본 사람이라면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상류에 있다는 화룡연은 와룡소로 여겨진다. 뾰족뾰족한 산봉우리들이 둘러싸인 계곡 가의 청림사(淸臨寺)는 (古)靑林寺 터이거나 그 주변으로 여겨지며, 절 뒤에는 깎아 선 것이 천 길이나 되어 기어오를 수 없으므로 이름을 학암(鶴岩)이라 부른다는 곳은 학봉(鶴峯, 안주봉)으로 여겨진다.

동국여지지보다 50여년 빠른 시기의 기록인 심광세(沈光世)의 유변산록(遊邊山錄, 1607년 5월)에도 가마소계곡에 대한 기록이 보이는데 동국여지지의 기록과 거의 일치한다.

“어수대(御水臺)에서 십여 리를 가서 청계사(淸溪寺)에 이르렀다. 절 왼쪽에는 학봉(鶴峯)이 있는데 깎아서 세운 듯한 것이 만 길이나 되고, 푸른 학 한 쌍이 내려앉은 둥지가 있다, 절 뒤에는 청연암(淸淵菴)이 있다. 절 앞으로 시내가 흐르고 그 상류에 청연(淸淵)이라는 못이 있는데, 못은 맑고 깊으며, 길이와 넓이가 수십 보는 될 만하며, 사방에는 큰 바위들이 에워싸고 있고, 물은 옥 같은 소리를 내며 흘러나와 그 바위 위로 평평하게 펼쳐져 발을 씻고 또 양치도 할만 했다. 억지로 십 리쯤 가서야 비로소 화룡연(火龍淵)에 도달할 수 있었다. 가뭄이 들면 이곳에서 늘 향불을 피우고 제물을 바치면서 비가 오기를 기도하는데, 신령이 응답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화룡연을 보고 나서 뒤에 다시 왔던 길을 따라서 청림동(淸臨洞) 입구를 나와 십여 리를 걸어서야 비로소 실상사(實相寺)에 이르렀다.”

이 기록에서 청연은 가마소, 화룡연은 와룡소, 학봉은 병봉(안주봉)으로 추정되며, 청계사는 서운마을 기도원을 지나 대나무 숲이 있는 곳, 즉 학암(안주봉으로 추정됨)을 왼쪽에 두고 청계사(淸溪寺)가 있었다면, 청연암(淸淵菴)은 대밭 뒤 어디쯤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천층암은 안주봉, 또는 안주봉에서 북으로 이어진 산 능선 어디쯤의 절벽 위에 있었던 암자로 추정된다.

그러고 보니 안주봉에서 북으로 이어진 봉우리를 변산반도국립공원의 지도에는 ‘천총봉(266.4m)’이라 표기하고 있고, 현지의 주민들은 ‘청춘봉’이라 부르고 있는데 혹 천층봉이 천총봉, 청춘봉으로 음이 변한 게 아닌가 추정해 본다.

그렇더라도 한 가지 미진한 점은 동국여지지에 기록된 청림사(淸臨寺)가 확인이 안된다는 점이다.

조선 중종 25년(1530)에 개정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청림사(淸臨寺)-중 선탄의 시가 전한다.”고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1980년에 간행된 『부안향토문화지』(변산문화협회 발행)나 1990년에 간행된 『사찰지』(전라북도 발행)에는 “하서면 백련리에 있었던 절로 동국여지승람에 선탄의 시가 전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동국여지지의 청림사(淸臨寺)가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부안향토문화지의 청림사(淸臨寺)와 같은 절인지, 아니면 같은 이름의 다른 절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어쨌든 변산에는 청림사(淸臨寺)와 발음이 같은 두 靑林寺도 있었다. 그래서 편의상 古靑林寺와 新靑林寺로 구분해 부르는데, 서운암에서 가마소 가는 길에 있었던 절을 古靑林寺라고 부르며,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123호로 지정되어 개암사 지장전에 모셔져 있는 청림리석불좌상이 이곳 고청림사터에 있었던 석불이다. 新靑林寺는 지금의 청림마을에 있었던 절로 내소사 고려동종(보물 제277호)이 이곳 신청림사터에서 출토되었다.

이로 볼 때, 청림사(淸臨寺)가 청림사(靑林寺)의 오기인지, 청림사(靑林寺)터 부근에 청림사(淸臨寺)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청림사(靑林寺)터에 청림사(淸臨寺)를 지은 것인지..., 부안의 향토사학자이신 김형주 선생이 “1970년 말경 청림사의 사지(寺址)에서 수습한 명문와당(銘文瓦當)에 청림(淸臨)이라 명문되어 있었다.<김형주의 『부안의 땅이름, 마을이름』-도서출판 밝>”고 하시기에 해보는 생각이다.

위에서 열거한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청림사(淸臨寺)는 가마소계곡 어디쯤에 있었던 절이었을 것이라 추정되며, 따라서 천층암은 가마소계곡 안주봉, 아니면 그 주변에 있었던 절이라 추정된다. 지금이야 청림 마을과 가마소계곡 입구 서운암 일대까지를 포함하여 청림(靑林)이라 부르지만 예전에는 서운암 일대를 청림(靑林)과는 별개로 청림(淸臨), 혹은 청림동(淸臨洞)이라 불렀는지도 모를 일이다. 심광세의 유변산록에 “화룡연을 보고 나서 뒤에 다시 왔던 길을 따라서 청림동(淸臨洞) 입구를 나와 십여 리를 걸어서야 비로소 실상사(實相寺)에 이르렀다.”는 淸臨洞이라는 기록이 확증을 더해 준다. 가마소계곡 일대는 계곡물이 맑아 푸를 靑자가 아니라 맑을 淸자를 쓸 수 있지 않을까?


/허철희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GGAM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