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21

검은큰따개비

전편에서 왕등도 해안 바위에는 홍합, 거북손, 검은큰따개비가 서로 어우러진 채 밭을 이루다시피 다닥다닥 붙어산다고 했다. 이 중에서 검은큰따개비와 거북손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해안의 바위, 말뚝 등 딱딱하고 고정된 곳이면 집단으로 붙어사는 따개비류는 생김새로만 보면 굴이나 홍합의 사촌쯤으로 여겨지지만, 게, 가재 등과 함께 절지동물문에 속해 있다.

따개비류의 겉모양은 분화구처럼 생겼는데 몸체는 이 속에 들어있다. 물이 들면 먹이기관인 6쌍의 갈퀴 모양의 가슴다리(부속지)를 입구에 내놓고 물속에 있는 플랑크톤 같은 작은 생물을 빗질하듯 걸러 먹고, 물이 빠지면 입구를 닫아 수분의 증발을 막는다. 이처럼 몸이 갈퀴 모양의 부속지로 되어 있어 절지동물문에 속하는 것이다.

따개비 중에서 검은큰따개비는 직경이 3~4cm 정도로 제일 크다. 그런데, 위도사람들 이야기로는 이 검은큰따개비로 국을 끓이면 아주 시원한 게 그 맛이 아주 일품이라고 한다. 남쪽 섬 지방에서는 이 국을 귀한 손님에게 내놓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검은큰따개비(굴통굴桶蠔)ⓒ부안21

그런데 이 검은큰따개비를 채취하려면 고난도의 기술이 요구된다. 이에 대해 정약전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검은큰따개비를 굴통굴(桶蠔)라고 했는데, “이 굴통굴을 따는 사람은 쇠 송곳으로 급히 내리친다. 그러면 껍데기가 떨어지고 고깃살이 남는다. 그 고깃살을 칼로 때어낸다. 만약 내려치기 전에 굴통굴이 먼저 알게 되면 차라리 부서질지언정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어쨌든 정약전이 설명한데로 껍데기를 칼로 내리치면 껍데기는 떨어져 나가고 덜된 두부처럼 생긴 고깃살만 바위에 남게 된다. 그러면 이 고깃살을 칼로 잘 따내어 씻지 않고 그대로 국을 끓인다. 만약 물에 씻는다면 형체도 없어질 뿐 아니라 맛도 없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맛있다는 굴통굴을 왕등 방문길에 맛보려고 벼렸는데 ‘겨울이라야 제 맛’이라는 충고를 받아들여 다음으로 미루었다. 올 겨울에는 왕등은 아니더라도 위도를 방문하여 기필코 굴통굴 국 맛을 보리라. 정 그것도 아니라면 변산의 궁항 등지 인적이 드문 해안에도 굴통굴은 서식한다.

거북손

몸길이 3∼5cm 정도 되는 거북손은 홍합, 검은큰따개비와 함께 바위틈에 무리지어 붙어산다. 몸은 자웅동체로 몸의 위쪽 끝은 손톱모양이며 큰 각판(殼板)을 이룬다. 그 둘레에 작은 각판이 둘러서는데, 이것이 자루까지 이어진다. 자루에는 미세한 각판이 비늘모양으로 덮여 있다. 조수가 밀려오면 석회판 사이에서 다리를 펴서 물속의 작은 생명들을 모아 잡아먹는다.

거북손은 거북의 손을 닮아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 보기론 새의 발을 닮았다. 어쨌든 이 거북손은 지역마다 다르게 부른다. 여수지역에서는 부채를 닮았다 하여 ‘부채손’, 흑산도에서는 ‘보찰’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어떤 이들은 바위틈에 핀 난초로 비유하는가 하면, 정약전은 다섯 봉우리가 솟은 산이라는 뜻의 ‘오봉호(五峯蠔)’라고 했다. 바위에 그려진 한 폭의 산수화를 떠올렸던 듯하다. 이쯤 되면 새 무리의 발 정도를 떠올린 나의 정서는 황량하기 그지없어 멋 적을 뿐이다.

거북손(보찰굴五峯蠔)ⓒ부안21

다음은 정약전의 거북손에 관한 기록이다.

보찰굴(五峯蠔)

"큰 놈은 너비가 세 치 정도이고, 오봉(다섯 개의 봉우리)이 나란히 서 있다. 바깥쪽 두 봉은 낮고 작으나 다음의 두 봉을 안고 있으며, 그 안겨져 있는 두 봉은 가장 큰 봉으로서 중봉을 안고 있다. 중봉 및 최소봉(最小峯)이 서로 합하여 단단한 껍질이 된다. 그 빛깔은 황흑색이다. 봉근(봉근)의 둘레엔 껍질이 싸고 있는데, 이 껍질은 유자와 같으며 습기가 있다. 뿌리를 돌 틈의 좁은 곳에 박고서 바람과 파도 가운데서 몸을 지탱한다. 속에는 살이 있는데, 살에도 붉은 뿌리와 검은 수염이 있다(수염은 물고기의 귀세미 같다). 조수가 밀려오면 큰 봉우리를 열어 수염으로 조수를 맞는다. 맛은 달콤하다."

참으로 뛰어난 관찰력이다. 그리고 맛이 달콤하다고 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남도 지역에서는 거북손을 즐겨 먹는다고 한다. 독이 없어 날로도 먹을 수 있고, 삶아 먹으면 살이 쫄깃한 게 게맛살이나 새우 맛이 난다고 한다. 흑산도에서는 아주 특별한 손님에게만 국으로 내놓는다는데 시원한 게 맛이 일품이라고 한다.

/허철희/huh@buan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