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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셋 젊은 나이에 하늘 길 떠난 김영표 님ⓒ부안21

부안에 심한 눈발이 흩뿌리는 날에 그의 소식을 들었다. 나는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 아직도 지역에는 돌아볼 일들이 많고 그의 손길을 기다리는 다문화 가정도 많은데 죽음 길을 총총히 떠나다니 믿을 수 없었다.

주산 구담리 사람

12월 20일에 부안 장례식장을 찾았을 때, 부안 농민회 사람들이 황망히 문상객을 맞고 있었다. 앉아 있는 사람들은 웬 날벼락이냐며 서로는 말들을 잃고 초점 없는 눈으로 앉아 있었고 다문화 가정 여성들도 한쪽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필자는 김영표(세례명-알렉산델)를 자주 만났고 웃는 모습과 꾸미지 않는 수더분한 모습을 좋아했지만 이제 와서 돌아보니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주산이 고향이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장례식장에 가서야 홀로된 어머니를 모시고 구담리에 산다는 것과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 김철현 선생이 10여 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사실도 알았다.

사람들은 “영표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는 비가 몹시 내리더만, 영표가 죽으니 눈이 많이도 내린다.”고들 말했다. 또, “장례식장에 온 사람 가운데 영표한테 미안해하지 않은 사람 아마 없을 거야.”라는 말도 들린다.

주인 잃은 그의 트럭에는 누구라도 부르면 언제라도 달려가기 위해 쌓아놓은 물건과 기구들이 아직도 차 안 가득하다. 동지들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소외된 자들을 위해 뛰어다녔던 그의 열정의 모습을 떠올렸다.

‘부안 한국어 교실’ 김영표 교장

김영표는 건설회사에 근무하다가 귀향을 결심했다. 농사를 짓겠다고 내려온 고향은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새만금이 정치 논리로 굴러가는 것이나 쌀이 남아나는데도 생산성이 높은 갯벌을 없애고 논을 만든다는 허황한 논리에 동의 할 수 없었다. 1999년 ‘새만금을 반대하는 부안사람들’이 환경운동을 시작할 때 초기 일꾼으로 참여했다.

그 당시 새만금을 찬성하는 사람들 맘속에는 적당한 이유를 붙여서라도 새만금 물막이 공사만 끝내면 ‘뭐, 논만 만들겠느냐’는 보이지 않는 계산이 숨어 있기도 했다. 새만금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갯벌의 중요성과 새만금의 실상을 알리고 부당성을 홍보했다. 그러나 지역 사람들은 그동안 소외지역으로 개발에 뒤쳐지다가 이제라도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서 개발을 하겠다는 것을 고마워해야지 반대만하면 어떻하느냐는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었다.

새만금 문제는 문규현 신부의 삼보일배로 정점을 치닫다가 법원의 판결에 의해 물막이 공사가 재개되면서 동력을 잃었다. 그러나 둑을 막상 막으니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요즘에는 해수유통으로 담수호가 썩는 것을 막고 일부 개발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 뒤에도 많은 일들이 영표에게 다가왔다. 2003년에 핵폐기장을 위도에 짓겠다는 군수의 판단에 부안 사람들은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김영표는 매일 밤 촛불시위에 필요한 무대 장비를 설치하는 궂은일에 힘을 보태고, 싸움 과정에서 교도소에 갇히기도 했다.

이런 중에도 그의 마음이 다가간 것은 부안에 있는 이주 여성 문제였다. 부안여성농업인 센터의 임덕규 소장과 함께 이 여성들에게 한글이라도 깨치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맨손으로 뛰어들었던 것이 2005년 5월 이었다. 그리고 직장을 가진 이주여성들이 평일 날 이어지는 정규 프로그램에는 참여할 수 없어서 부안 성당에서 일요일에 ‘부안 한국어 교실’을 열어 가르쳤다. 이주여성들은 김영표를 교장선생이라 부르며 따랐다. 그날도 이들을 위해 성당으로 가다가 차 속에서 쓰러진 것이다.

그가 화장되어 변산으로 떠나는 날은 화창한 날씨가 그의 길을 마중했다. 고사포해수욕장 맞은편에 아버지가 누운 곳에 그도 묻혔다. 그는 농담처럼 ‘내 죽으면 선산 백일홍 밑에 묻힐거야’라고 말했다는데,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누구도 몰랐다.ⓒ부안21

너의 작은 힘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그는 술을 일체 하지 않았다. 즐기던 담배도 1년여 전에 뚝 끊었다. 혈압이 높다는 말도 있었지만 혈압 약을 먹지도 않았다. 식사 할 때는 손이 떨리는 증상을 보였는데, 주변에는 수전증이라고 애써 말하며 걱정하지 않도록 했다. 가까운 사람들은 그 정도면 병원에서 진단이라도 받도록 억지로 떠밀어 가도록 했어야 했는데 라고 뒤늦은 후회를 한다.

그가 무엇이 그리 바빠서 병원 한번 제대로 못 갔는지 알 수 없지만 헐거운 바지를 입고 등산화를 신고 자신이 필요한 곳으로 바삐 뛰어다녔다. 마치 건설현장에 있을 때 모습 그대로 현장에서 살았다. 부안에서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자신이 필요한 곳에서 일을 찾았다. 갑자기 어머니를 잃은 해변가의 여학생이 있었는데 그는 학생이 방황하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교사에게 상담을 부탁하는 전화를 걸곤 했다. 아이들을 이뻐하니 동료들의 자녀들이나 만나는 아이들은 그를 스스럼없이 '영표삼촌'이라 부르며 따랐다.

언젠가 학교를 찾은 영표는 부안 학생들에게 부안에서 생산되는 유기농 쌀을 급식으로 공급할 수 있다며 기쁨에 들떠 있었다. 그는 '주산사랑영농법인'에 참여하여 지역 사람들의 먹을거리와 생산에 접근하기 위해 공부하며 지역 농민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했다. 김인택 등과 함께 유채를 심어 식물성 기름으로 차의 연료를 대체한다거나 땅을 기름지게 할 수 있는 방법과 교육에 참여하면서 농촌의 미래를 설계했다. 농촌을 바꾸는 힘을 농사짓는 현장에서 찾으려 노력했다.

그는 부안 운동권에서는 막둥이였다. 나이 마흔셋에 후배가 없는 운동 판을 몸으로 때우는 전사였다. 이 속에서도 올해는 농민회 사무국장으로 궂은일을 도맡았고, 부안 영화제도 실무를 맡아서 영화관에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장비를 가지고 동네를 찾아다니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영화를 보여주며 새롭게 접근했다. 8월 20일에 시작한 ‘찾아가는 영화제’는 야외에 스크린을 설치하는 등 해야 할 일들이 많았음에도 힘든 농사일 끝나면 밤에는 피곤한 몸 이끌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추석과 추수기에 쉬던 영화제는 12월에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막상 김영표의 모습은 이제 볼 수가 없다.

김영표는 쉴 틈이 없었다. 올해도 20여필지의 논을 경작하며 논과 자신을 기다리는 현장을 뛰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거대한 담론과 이론이 아니라 현장에서 싹트고 자라고 열매 맺는 다는 것을 알았기에 쉬지를 못했다.

마흔 셋에 길 떠난 김영표

결혼을 하지 않아 자녀가 없으니 누가 그의 죽음을 기억이라도 할까. 남을 돕겠다며 손이 부르트고 꽤재재한 모습으로 헐렁한 옷 입고 다니며 웃음 잃지 않던 그를 이제는 볼 수 없다.

왜, 그라고 사랑하고 결혼할 마음이 없었겠는가. 몹시 사랑하고픈 여인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자신의 심경 고백에도 여인의 마음이 열리지 않자 좋은 친구로 남고자 했다. 그녀가 관계된 일터에서 할 일이 있으면 영표는 차를 몰고 달려가 온갖 궂은일을 다했다. 못다 한 사랑고백처럼 그녀의 일을 도왔다.

그가 화장되어 변산으로 떠나는 날은 화창한 날씨가 그의 길을 마중했다. 고사포해수욕장 맞은편에 아버지가 누운 곳에 그도 묻혔다. 그는 농담처럼 ‘내 죽으면 선산 백일홍 밑에 묻힐거야’라고 말했다는데,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누구도 몰랐다.

홀로 백일홍 밑에 누워 있는 김영표가 쓸쓸하거나 외롭지 않아야 할 텐데. 소외된 자들을 향한 그의 열정과 그의 꿈이 잊혀져서는 안 될 텐데. 그래, 몹시 그리울 거야, 알렉산델.

/정재철

정재철은 백산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