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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설이다
| 2005·04·13 07:47 |
박형진의 아버지는 살아계실 때 바다에 나가면 고기도 잘 잡고, 솜씨도 좋아 뭐든지 잘 만들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 질통을 잘 멨는데, 몇 년 전 동네 어느 집에 갔더니 아버지가 멘 질통이 그 집에 있기에 사정사정하여 얻어왔다며 집 뒤안 벽 아래 애지중지 잘 모셔놓았다.ⓒ부안21




다시 설이다

쉬지근 한 세대에 접어드는 나이라 그런지...



양력의 설이야 여기 저기 돈 갚는 일로 심란스럽고 이런 저런 자리의 송년 모임 술 마시는 일로 몸을 망치게 되는데 설은 그렇지가 않다.

이제 쉬지근 한 세대에 접어드는 나이라 그런지 설이 돌아와야 지나간 것들이 돌아봐지고 뭔가 생각키워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야 개뿔도 뭘 돌아보고 자시고 할게 있을까마는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것 앞에는 마음이 예사로울 수만은 없는 것 같다.

스스로 뭐든지 단순하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생활하자고 다짐을 해도 결코 단순해지지 않는, 내 앞에 채인 이놈의 생활이라는게 대체 무엇이던가?

새삼스럽게 생각해보니 이 나이에 나는 무엇하나 이렇다할 성취가 없는 것 같다.

성취? 아나 떡이다, 객적은 맘이 없지 않지만 우선 큰 딸애의 나이가 벌써 스물 둘, 둘째 딸도 스물, 제 앞가림도 못할 것들을 객지로 내 보낸 아비된 놈의 심정이 단순하다면 그건 거짓말일 수밖에 없것이다.

애시당초 그럴 능력도 없었지만 돈 내버리고 시간 내버리고 눈깔 빨개져서 남을 짓밟아야 되는, 제도권 교육에 애들을 들이밀지 않은 것은 어줍잖은 내 교육철학 때문이었다 하드라도 그러나 그 원수놈의 돈이라도 많았다면 일요일도 쉬지 못하고 최저생계비도 되지 못하는 아르바이트생으로, 마침 저녘 한 시간 반씩 시달리며 출퇴근해야하는 출판사의 견습생으로 딸을 내보냈을 것인가?

저그덜 하고 싶은대로 학원이라도 보내고 하다못해 반듯한 방이라도 한 칸 마련해 주었을 터이다.

내 큰누님 말마따나 '거미새끼 같은 것들을 서울 백사지땅에 보내놓고' 색달븐 반찬 한 가지만 생겨도 딸애들 생각에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가지 않는,(휘유-) 이런 아비라도 보겠단다고 또 몇 시간씩 시달리며 이번 설에도 올 수 있을런지- 지난번 계모임 때문에 서울 올라간 김에 딸애들을 보러갔던 아내는, 돌아와 둘째애가 엄마차비하고 동생들 맛있는 것이나 사다주라고 주었다며 쓰지도 못한 돈을 봉투째 꺼내놓고 한참을 울먹였다.

농사는 또 어떤가?

천생 개으른 성격 탓인지 농사에 욕심을 내지 못하고 가을이 되면 그져 되는대로 거두며 사는 꼴이라 나 같이 뒹구는 재주가 농사뿐인 사람으로서 칠 팔마지기의 부모 조입지기 밭과 빚을 내서 산 한 필지의 논농사로는 자급자족도 되지 않아 해마다 빚위에 빚이 첩첩이 쌓여가는 것이다.

위로 형님 세 분, 누님 세 분, 칠남매의 막내인 내가 그나마 이렇게라도 땅을 붙들고 있을 수 있는 것은 땅 한평 욕심내지 않은 형님 누님들의 지극한 배려 덕분일 것인데 그러나 나는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부터는 쌀 한 됫박 고추 한 근을 형님 누님들 앞으로 보내보지를 못하는 것이다.

아무리 농사짓기가 어렵다고 하드라도 이것이 사람의 도리인가? 자괴의 심정이 부끄러울 뿐이지만 그러나 어찌된 까닭인지 남의 땅이라도 얻어서 몇 년 뼈 빠지게 고생해서 빚이라도 벗어보고 싶은, 그럴 엄두도 자신도 또한 생기지를 않는다.

비록 빚으로나마 삼시세 때 솥단지 밑구멍은 끄슬릴만해서 그럴까? 갈수록 힘든 일을 할 수 없는 몸의 부실함도 적지는 않다고 해야 할 것이다.

비가 오려고 이렇게 꾸무적한 날은
누가 나를 땅 속 저 깉은 곳에서
어서 오라고 마냥 잡아당기는 것 같다
뼘만한 가을해 아침 먹으면
트림한번 할 새 없이 밭으로 내 달아야 하는데
밥상이 나기 전 나는 제사상 받은 사람같이
상머리에 눕는다, 아니 저절로 몸이
방바닥에 가 들러붙는다
그러면 나는 천번도 더 나와 싸우지, 일어나자
일어나자 일어나자 일어나자……
하지만 그 무신 질긴 귀신이 내 온몸에 붙어
나를 잡아누르느냐, 팔 다리 어깨 허리 심지어 내 머릿속까지
사지를 잡아 사정없이 비틀고 찢어가고 골을 빼가니
어찌 한 단 말이냐
이 귀신은 우선은 약이 한가지 있는지라
눈물을 머금고 나는 아침부터 아내몰래
먹기 싫은 술을 억지로 한 잔 몸에 바친다
                                                                        -관절염1-



봄동 배추를 보아라, 폭이 차서 속이 노오란 배추는 스스로 부드러운 속을 감싸고 있는 그것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겨울 찬 바람에 얼고 썩어 버리지만 속이 차지 못하고 온 이파리들을 다 아모리지 못하는 봄동은 아무리 얼어도 썩지않고 오히려 그것 때문에 이파리가 더 두꺼워지지 않느냐ⓒ부안21


이런 글쓰기 역시 별 볼게 없다.

일년 열 두달을 두고 들어오는, 기껏 한두 번의 청탁글로야 언감생심, 처음부터 호구를 삼을려고 한 것도 아니었고 나같이 복 없는 놈은 책을 한 권, 그야말로 천신만고 끝에 내 놓아도 대박이 터지질 않는다.

대박? 대박은커녕 허락없이 함부로 남의 이야기나 들추어낸다고 대박살을 맞을 뿐이다. 배운 것이 없는 사람이라 그 쓰는 글에 무슨 깊은 것이 있다고 사람들이 읽어줄까, 농민들의 어려운 삶을 글로 드러내 보고자 했던 것들이 오히려 치기스러운 허욕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혼자 있을 때마다 속일 수 없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오를 뿐이다.

그러나 또 한편 어찌된 놈의 심사인지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쉬 마음이 움직거리고 때로 주책없이 눈물이 나서 연필을 잡게 되니 스스로 쓰는 일에서 이렇게 자유스럽지 못한 것도 천생 팔자이리라.

이러저러한 생각들로 심사가 불편해져서 술을 자주 먹는다.

물론 년말연초, 또 세시 명절이 가까워지니 풍물굿 칠 일도 많아서 이겠지만 겨우내 술만 먹었던 것 같고 술을 먹으면 자꾸 우울해진다.

그런데 우울하면 저 혼자나 우울하지 왜 매칼없는 아내를 못살게 하느냐 말이다. 하루는 아침을 짓고 있는 부엌에 들어가 찬물 한 그릇을 먹고 있는데 돌아서 먼 산을 보고 있던 아내가

"자기는 왜 술만(쳐)먹으면 사람을 볶아?" 힐난했다. 그때 그 힐난이 욕이라는 것을 아차 싶게 나는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솔직히 이러저러한 일들은 이루어지는 게 없고 나이만 먹어가서 자꾸 우울하고 괴로워진다고, 미안하다고 용서를 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돌아 나와서 하릴없이 밭가에 서서 초라한 내 몰골을 쳐다보았다. 못난놈 못난놈……
이 봄동 배추를 보아라, 폭이 차서 속이 노오란 배추는 스스로 부드러운 속을 감싸고 있는 그것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겨울 찬 바람에 얼고 썩어 버리지만 속이 차지 못하고 온 이파리들을 다 아모리지 못하는 봄동은 아무리 얼어도 썩지않고 오히려 그것 때문에 이파리가 더 두꺼워지지 않느냐.
갑자기 밝고 뜨거운 것이 내 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렇다. 인생이 어차피 과정일진데 사는 동안에 최선을 다하고 비록 욕되고 추한 것일지라도 그것도 너이니까 인정하고 지나치게 요란 떨지 말자.

그래! 내 땅위에 일년 열두 달 아침저녁으로 이렇게 두 발로 서 있을 수 있는 것만도 남이 누릴 수 없는 복 받은 일 아니더냐. 이 땅위에 이렇게 서 있다가 뼈가 부서지게 일하다가 여기에 묻히는 일 처럼 평화한 삶이 어딨더냐, 전날 먹은 술도 어느새 다 사라지고 어느덧 나는 한없이 가벼워져 있었다. 다시 설이 돌아 온 것이다.
/박형진



박형진은 '92년 창작과 비평 봄호에 <봄편지>외 6년으로 등단하였으며, 현재 변산에서 농사를 지으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시집 <바래속 감자싹은 시들어 가고>와 산문집<호박국에 밥말아 먹고 바다에 나가 별을 세던>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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