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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의 어업밭은 용궁의 꽃밭이요
[김길중의 오! 변산반도] 변산팔경(邊山 八景)
| 2006·08·18 03:00 |
웅연조대, 곰소 앞바다ⓒ부안21


조선팔경이라는 유래는 조선팔도(朝鮮八道)에 산재한 각 도의 대표되는 일경(一景)을 말하는 것으로, 이곳 변산도 산은 산대로, 계곡은 계곡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비경들이지만 선인들은 변산의 경관을 내변, 외변, 해변으로 나뉘어 모두 36경으로 구분하고 그 중에서도 더욱 빼어난 웅연조대, 직소폭포, 소사모종, 월명무애, 서해낙조, 채석범주, 지포신경, 개암고적 등, 여덟 경을 변산팔경이라 하였다. 혹 무문곡필의 우를 범하지나 않나 심히 염려되나 감흥을 누를 길 없어 시 한 수를 지어 봤다. 그리고 내려오는 문장을 정리하고 빠진 부문을 첨하고 개작하여 변산의 팔경을 설명하고자 한다.

          변산팔경

          월명암 돋는 달은 볼수록 아름답고
          낙조대 지는 해는 못 보면 한이 된다

          청산의 직소폭포 떨어지는 은하수요
          우금암 높고 높아 속세를 떠났구나

          방포의 해수욕장 여름의 낙원이요
          격포의 채석강은 서해의 금강이다

          서해의 어업밭은 용궁의 꽃밭이요
          내소사 은경소리 선인들의 운율이네...
                    
                    邊山에서 小松 金 吉 重


웅연조대(熊淵釣臺)

줄포만에서 시작하여 곰소 앞 호수같이 잔잔한 서해 바다의 아름다운 정경을 말한 것으로 야등(夜燈)을 밝힌 어선과 돛단배가 한가롭게 앞 바다를 지날 때 휘황한 야등 불빛이 투영(投影)되여 물에 어리는 장관과 강촌의 어부들이 뱃노래를 부르는 광경을 웅연조대라 한다.


직소폭포ⓒ부안21

      직소폭포(直沼瀑布)

내변산의 가장 중심인 직소폭포는 서쪽으로 신선대, 분초대, 망포대의 물줄기를 시작으로 동으로 옥녀봉, 덕성봉을 합하고, 남으로 선인봉 쌍선봉 등 칠산(七山)으로 둘러 쌓여 숨차게 혹은 유유히 흐르는 물줄기가 벼랑간 30m의 암벽단애(岩壁斷崖)로 은하수처럼 떨어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둥근 소(沼)를 이루고 잠시 물살은 숨을 고른 후 실상용추(實相龍湫)를 한 바퀴 돌아 다시 분옥담(憤玉潭), 선녀탕(仙女湯)의 폭포를 이루니 변산 최고의 비경으로 팔경 중에서도 제일경이다. 그래서 "직소폭포의 선경(仙景)을 보지 않았다면  감히 변산을 말하지 말라"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
다.
                              

소사모종, 내소사의 저녁 종소리ⓒ부안21

      소사모종(蘇寺暮鍾)

다소곳한 여인이 님을 기다리는 듯한 형상의 가인봉(佳人峰)을 배경으로 고색창연한 내소사(來蘇寺)에 황혼빛 노을이 질 무렵 산영(山影)으로부터 서서히 다가오는 어둠을 헤치고 은은히 울려 퍼지는 소사(蘇寺)의 신비로운 저녁 종소리의 운율은 속인(俗人)들의 사바 세상의 세뇌(世惱)를 잠시 잊게 해주니 이곳이 변산의 정인정사요, 도솔천(兜率天)이 아닌가.? 그래서 선인들은 내소사의 저녁 종소리를 변산 팔경으로 즐겼나 보다.


월명무애, 월명암에서 본 변산무애ⓒ부안21

     월명무애(月明霧靉)

하늘의 불 구슬을 엄자산(崦嵫山)에 보낸 후 일행은 월명암 스님의 법문에 숙연히 인생을 배우고 세속의 시름들을 씻어 버린 후 쌍선봉(雙仙峯) 득월대(得月臺)에 서서 만학천봉(萬壑千峰) 안개 속에 묻힌 자락에 어느덧 둥실 떠오른 월명야경(月明夜景)과 새벽 잠을 깬 온갖 산새들의 지저귐 속에 봉우리마다 자욱한 운애(雲曖)가 용트림하는 산곡 일봉 일봉 위에 빠알갛게 동이 떠오르는 산 봉우리들의 미경(美景)을 모아서 월명무애(月明霧靉)라 하였다.


서해낙조ⓒ부안21

      서해낙조(西海落照)

월명암 뒤쪽으로 오솔길을 따라 약 20분쯤 오르면 서쪽 산등성이에서 바라보이는 짙푸른 서해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누대(樓台)가 우뚝 솟아 올랐는데 이곳이 바로 낙조대(落照台)이다. 낙조대(落照台)는 일망무제(一望無際)로 서해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며 비록 서해안 곳곳에서 낙조를 구경할 수 있지만 변산 낙조대(落照台)에서 조망하는 황혼(黃昏)의 진경(眞景)은 가히 환상적이다.

황금색으로 물든 서해바다 가운데 점점이 늘어선 고군산열도(古群山列島)의 섬들과 수평선 아련한 위도섬(蝟島) 뒤쪽으로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며 온 바다를 진홍(眞紅)으로 물들이며 온종일 그토록 찬연했던 태양이 그의 위세를 어쩔수 없이 엄자산(崦嵫山) 탕곡(蕩谷)에 접어야 하는 황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인생의 희노애락(喜怒哀樂)과 자연의 순리에 나그네는 가슴에 형언할 수 없는 애련한 우수에 젖어 버린다.

이윽고 어두워지는 천지는 일시에 고요한 적막에 쌓이고 행여 우각봉 산마루에 초이레 초승달 이라도 만나게 된다면 천재일우(千載一遇) 이만한 장관을 이곳이 아니면 어찌 그 진수(眞髓)를 볼 수 있으랴. 그래서 옛 선인들이나 노산 이은상 시인도 변산 팔경 서해낙조를 그처럼 찬하였으리라.


채석범주. 채석강ⓒ부안21

     채석범주(彩石帆舟)

닭이봉(鷄峰)에서 북쪽 용두산(龍頭山)까지 약 2km의 해안 절벽인 채석강(採石江)과 적벽강(赤壁江)의 바위는 억만년 세월을 파도에 깎이어 절벽을 이루고, 절벽은 다시 씻기어 동굴을 이루었으니 대 자연의 신비(神秘)와 비밀을 간직한 경이로운 자연 조화의 표상이리다.

만권(萬券) 서적을 쌓아 놓은 천하절경 채석강은 오석(烏石)을 등불 삼아 이태백이 노닐었고… 석양 진홍빛에 더욱 붉은 적벽강은 소동파가 노닐었다는 곳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 준 이름이란다.

해안의 만촌은 해조음(海潮音)에 잠기고 낙화는 물에 떠서 세간(世間)으로 흘러가는 변산팔경 채석범주(彩石帆舟)의 진경(眞景)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지포신경, 지포계곡ⓒ부안21


     지포신경(止浦神景)

변산면 지서리를 옛날에는 지지포(知止浦)라 했다. 지지포에서 쌍선봉으로 향하는 등정(登程)은 숲속을 헤치며 가파른 산등성이를 숨차게 기어올라 산중턱에 이르면 얼마나 상쾌하고 시원한 바닷바람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중산마을을 휘감고 도는 쇠꼬랑날 봉우리에서 조망되는 서해바다는 만폭병장으로 발 아래 펼쳐지고 나는 이윽고 별유천지(別有天地)에 떠 있는 신선으로 착각을 하는 곳이다.

이러한 지포계곡은 망포대와 주봉인 삼신산에서 시작하는 물줄기가 기름밭골 계곡으로 크고 작은 소(沼)와 폭포를 이루며 지지포에 흘러와 서해에 이르는 계곡을 기름밭골(谷) 이라 이름하였으니 전하는 유례가 또한 기이하다.

즉 기름이란? 불(火). 등불과 관계가 되는 듯 한데 기름밭골 계곡에 등잔을 뜻하는 옥등계벽(玉燈溪壁)이라는 바위가 있다. 바위 밑을 흐르는 물의 잔영(潺影)이 바위에 투영(投影)되어 바위 면(面)에 등잔불을 켜 놓은 듯한 환상을 일으킨다. 가마소계곡의 가마솥과 비슷한 물 여울 현상이다.

다음은 부싯돌을 가져왔다는 성냥골 바위, 그리고 옥등계벽의 등잔(燈盞) 불빛이 미치지 못하여 항상 어둡다는 어둠골 등이 있다. 특히 이 계곡은 변산의 다른 계곡들과는 달리 갈수기(渴水期)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 유일한 계곡이다.

가까운 사람들의 발길조차도 잘 닿지 않는 숨겨진 변산팔경 중의 하나인 지포신경은 바로 이 지포계곡과 주산인 망포대, 쇠꼬리랑 주변의 산수미(山水美)와 서해(西海)의 포구까지를 함께 어우린 해륙풍경의 진수(眞髓)를 말한다.


개암고적, 개암사ⓒ부안21

      개암고적(開岩古蹟)

개암(開岩)이란 뜻은 이곳에서부터 변산(邊山)이 열린다라는 뜻으로 개암사(開岩寺)는 변산의 사대 명찰 중의 하나이며 먼 옛날 묘암스님이 이곳에서 능가경(愣伽經)을 설(說)하니 변산의 모든 짐승들까지도 깨우쳐 온 산야와 고장이 평화로웠다. 그래서 그때부터 이곳을 능가산 묘암골이라 전하여 온다.

그 후 비정되는 주장에 의하면 나당(羅唐) 연합군에게 나라를 빼앗긴 통한의 백제 우군들이 이곳의 울금 바위를 중심으로 석성(石城)과 토성(土城)인 주류성(周留城)을 본거지로 진(陣)을 치고 일본에 있던 백제 의자왕의 넷째 아들인 부여 풍(扶餘豊)왕 을 주축으로 백제 탈환전쟁 (660~664년9월)을 4년여간이나 끈질기게 전개한 본거지인 곳으로 비정되기도 하는 곳이다.

그렇게 영고성쇠(榮枯成刷)의 역사적 자취와 전설을 간직한 주류성지 묘암사지를 변산팔경 개암고적이라 한다.

/小松 金 吉 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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