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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봄날 홀로 산과 들을 거닐고..."
[김길중의 오! 변산반도] 변산36경(邊山三六景)
| 2006·12·28 23:32 |
의상봉에서 내려다 본 변산ⓒ부안21


변산의 36경(邊山三六景)

‘변산팔경’으로 변산의 비경을 다 꼽을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인지 변산의 비경을 내변 12경, 외변 12경, 해변 12경으로 나누어 36경을 꼽았다. 이른바 ‘변산36경’이다.

내변
1.쇠뿔바위 2.백천내 3.석문동. 4.군신봉 5.봉래구곡 6.직소폭포 7.월명암 8.낙조대 9.쌍선봉 10.와룡소 11.가마소 12.의상봉의 마천대

외변
1.영은폭포 2.금선대 3.개암사 4.울금바위 5.월정약수 6.주류성지 7.보령원 8.도요지 9.우반이굴 10.성계암 11.청련암 12.내소사

해변
1.월포 2.비득치 3.변산해수욕장 4.채석강 5.수락동 6.언포 7.적벽강 8.비안도 9.계화도 10.곰소 11.죽도. 12.작도<출처/부안군지1991년간>


‘변산36경’은, 해변의 경 중에 ‘작도’가 꼽혀있는 것으로 보아 해방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36경이 지어질 당시와는 달리 지금은 그 모습도 많이 바뀌어 있다. 곰소에는 원래 곰섬(雄淵), 범섬(虎島), 까치섬(鵲島) 등의 섬이 있었으나 1942년에 이 세 섬을 연결하는 제방을 쌓아 육지로 연결한 다음 항구를 만들었다. 지금의 곰소의 모습이다. 변산36경의 일경인 작도(까치섬)는 지금은 섬이 아니라 육지의 한 마을로 변해 있다.

그 후로도..., 변화는 거듭되어 변산36경 중 석문동, 백천내 등의 비경은 부안댐의 건설로 지금은 물속에 잠기었다. 봉래구곡도 6곡 금강소, 7곡 영지, 8곡 백천, 9곡 음지는 그 모습이 많이 변해있거나 아예 부안댐에 잠기었다.

그런가하면 월포, 비득치, 계화도 등지의 비경도 새만금 건설로 인해 예전의 모습이나 정취를 느낄 수 없게 되었다.

그렇더라도 36경 중에서 몇몇 경을 틈틈이 답사하고, 그곳의 특성이나 위치 등을 정리하여 아래에 소개하자고자 한다.


쇠뿔바위ⓒ부안21

쇠뿔바위(牛角峯)
상서면 청림리

상서면 우슬재(牛膝峙)로부터 시작되는 일명 석재와우(石峙臥牛)의 장중한 쇠뿔 형상의 천척 괴암은 가히 변산을 대표할 만한 누대이다.

어수대(御水台)나 청림 세제로 진입하여 지장바위 지나 산새들의 노래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어느덧 쇠뿔바위에 도달하는데 봉우리 위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가슴이 툭 트이는 원대함과 시원함을 느낀다. 등산을 좋아하는 분에게는 가히 권하고 싶은 등산코스이며 변산의 특출한 누대(樓台)이다.


쌍선봉에서 내려다 본 부안호ⓒ부안21

쌍선봉(雙仙峯)
변산면 중계리

월명암에서 서쪽으로 약 500m 정도에 위치한 쌍봉(雙峰)으로 변산에서는 의상봉(509m)에 이어 두 번째(498m)로 높은 산봉우리이다. 보안면 선계안(仙溪岸)에서 이성계는 신령한 두 노인으로부터 나라를 창업하기 위한 문무를 깨친 후 은사님들을 배웅하기 위하여 선계안으로부터 3000보(步)를 따라와 마지막 인사를 올린 후 뒤돌아보니 두 노인은 간 곳이 없고 그 자리에 산봉우리 두 개가 솟아올랐는데 그로부터 쌍선봉(雙仙峰)이라 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이곳은 조망이 매우 좋아 변산 만학천봉의 웅장함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특히 봉우리마다 자욱한 운애(雲曖)가 용트림하는 산곡 일봉 일봉 위에 빠알갛게 동이 터오는 모습은 가히 선경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 경이 바로 변산팔경 중의 일경으로 월명무애(月明霧靉)이다.


청림에서 본 의상봉 마천대ⓒ부안21

의상봉 마천대(摩天台)
변산면 중계리/하서면 백련리
                  
의상봉(509m)은 변산의 최고봉으로서 마천대라고도 한다. 신라 고승인 의상대사가 이곳에 절을 세워 의상사라 했기에 의상봉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동남쪽 절벽 중간쯤에는 진표율사가 망신참선으로 수행하여 189패쪽의 신표간자를 미륵보살과 지장보살로부터 현신 받았다고 전하는 부사의방장이 있다. 의상봉 정상에서 희는 듯 푸른 운해 속에 변산천봉을 조망하는 신비함과 발아래 점점한 고군산열도, 그리고 하얀 포말이 밀려오다 점멸 하는 아스라한 칠산바다의 시원함은 가히 가슴이 뚝 트이는 장쾌함을 느낄 수 있는 변산 제일의 누대이다.


보령원ⓒ부안21

보령사(保寧祠)
상서면 감교리
                        
주류산성을 찾기 위하여 개암사 입구로 접어들다보면 도로 왼편 500여m 떨어진 곳에 김유신장군의 사당인 보령사(保寧祠)가 있다. 백제부흥운동의 중심지였던 이곳에 백제를 멸망시킨 장본인 김유신 장군의 사당을 1922년 신라 삼국통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김해(金海) 김씨들이 건립하였는데 영당(影堂)에는 김유신 장군의 초상화도 봉안하고 진해루(振海樓) 외 전사각(典祀閣) 제관실(祭官室) 등 원내의 대지 면적이 500평 정도의 규모이다. 어쨌든 역사는 승자(勝者)만이 기록할 수 있구나 하는 아이러니를 느끼는 곳이다. 주류성과 대치되는 가까운 지역에 서로 적대관계인 승자와 패자의 자존심의 대결을 보는 것 같아 좀 묘한 기분이 드는 곳이기도 하다.<참고문헌: 1982년 변산의 얼>


우동리 굴바위ⓒ부안21


우반이굴
보안면 우동리

보안면 우동저수지 맞은편에 높이를 헤아릴 수 없는 천척절벽이 보이는데 이곳이 바로 굴 바위라 칭한다. 절벽 안은 천연동굴로 그 크기와 깊이가 이삼백 명은 능히 들어갈 수 있을 만한 크기이며 이 굴 안에서 불을 때면 연기가 해창 바닷가로 나온다는 전설이 전하는 곳이다.


선계안과 선계폭포ⓒ부안21

선계안(仙溪岸)
보안면 우동리

보안면 우동저수지를 끼고 바디재를 넘기 전 오른쪽으로 산등성이를 돌아들면 몇 발짝 가지 않아 천야만야한 벼랑이 발아래 펼쳐진다. 벼랑 사이로는 비류직하(飛流直下)하는 물줄기가 있으니 바로 선계폭포다. 부안의 일부 향토사학자들은 이 부근 어디엔가에 1608년 공주목사직에서 파직당한 허균이 와서 쉬었다는 정사암 터가 있을 것으로 비정하고 있고, 또 허균이 이곳에 머물며 광해군시절의 모순된 사회현상을 비판하고 이상향의 율도국을 찾아나선다는 홍길동전을 썼을 것으로 비정하고 있다.

그곳에서 더 오르면 비교적 편편한 분지가 나오는데 이곳에서는 진표율사가 금산사 숭제법사의 안내로 점찰계법을 구하다 영험을 얻지 못하자 이곳을 떠나 부사의방장으로 선처를 옮겼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또, 조선을 창업한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문무를 연마하던 중 두 현인을 만나 창업에 필요한 도를 얻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이런 연유로 선계안, 선계폭포를 성계암, 성계폭포라 부르기도 한다.) 풍수나 지학을 접해보지 못한 이 사람의 느낌으로도 이만하면 예로부터 선인이나 도인들이 대각(大覺)을 구(救)하고자 도량(道亮)를 마련하였겠다고 생각되는 영지(領地)로 보인다.

지금도 선계안 분지엔 하늘을 찌르는 듯한 왕대숲과 송림숲에서 지저귀는 새소리 풀벌레소리 시냇물 넘나드는 아늑한 정요함이 옛날과 같을진대 비록 선인들처럼 원대한 꿈을 꿀 수 없는 나 같은 속인(俗人)은 그저 청풍(淸風)을 벗하여 이곳에 초당이나 한 칸 짖고 세파의 군더더기를 던져버린 채 남은 세월을 “회량신이고왕(懷良辰以孤往)/따뜻한 봄날 홀로 산과 들을 거닐고”  “임청류이부시(臨淸流而賦詩)/강물이 흐르는 곳에서 시도 짓고, 읊으며” 소소(嘯嘯)하고 한적한 삶을 사르고 싶은 곳이다.

邊山에서
                    
小松  金吉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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