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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한 자태 해무에 감긴 채..."
[김길중의 오! 변산반도] 위도
| 2007·03·27 00:41 |
대항리에서 본 위도ⓒ부안21


먼저 독자 여러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위도에 들렀다가 다시 변산으로 돌아올까 한다.

위도에 고슴도치 위(蝟)자를 쓴 것은 섬 모양이 고슴도치 모양과 비슷하여 그렇게 이름 지은 듯하다. 그런 위도는 변산의 서쪽 끝단인 격포로부터 14km 선상에 위치하며 변산반도와 더불어 영광(榮光)과 애환(哀歡)을 같이해 온 섬이다. 격포항을 출발하는 여객선에 몸을 싣고 우렁찬 뱃고동 소리와 함께 출발하여 점점 멀어지는 변산 자락의 기암절벽을 감상하면서 방파제를 빠져 나와 망망대해 칠산(七山)바다 파도를 가르노라면 갈매기 떼가 머리 위를 날고 만선의 꿈 실은 고기잡이배들이 우리 곁을 스치고 지나갈 때 여행객들은 아마 가벼운 흥분과 낭만의 시심에 젖게 될 것이다.

어느덧 임수도를 지나 파장금항이 바라다 보이니 하선 준비를 하여야 할 위도(蝟島)섬을 고찰해 보기로 한다.

위도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는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식도고분(고려시대 추정)등의 유물을 통해서나 또 고려 후기 사람 이규보의 유배지였던 점으로 미루어 늦어도 고려시대부터는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조선 성종조에 발행된 ‘동국여지승람’에 “현(부안) 서쪽 가운데 있고, 둘레가 30리이며, 어량(어살)이 있다.” 등의 기록으로 보아 고려시대부터 부안군의 영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후 조선 말엽 1896년(고종33) 전라 좌우도를 전라남북도로 행정구역을 획정(劃定)하면서 비안도와 더불어 위도가 부안군의 영지를 이탈하여 전라남도 지도군으로 편입되었다.

그러던 중 1914년 일제 강점기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지도군이 소멸되면서 당시 교통이 통하던 전라남도 영광군으로 편입되었다.


위도 진리, 면 소재지이다. 예전에 이곳에 수군 진을 설치했었다.ⓒ부안21


위도 치도, 썰물때는 바다가 갈라진다.ⓒ부안21

그러다가 1963년 1월 1일자로 다시 본 영지인 부안군으로 편입되었다. 이 과정을 1970년대에 발행된 ‘신동아’의 비판 멘트를 기억하면 다음과 같다.

“박정희 소장은 1961년 5월16일 일단의 군부 세력과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후 1963년 제 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전 민선국회(民選國會)를 구성하기 위하여 총선(總選)을 실시해야 하는 과정에서 같이 군사 쿠데타를 주도한 동료, 그 당시 공화당 사무총장 길재호씨의 지역구를 선정하다 보니 마침 전라북도 금산군에 길씨들이 많으므로 이곳에서 출마를 결정하면서 정치적(政治的) 상황이 전라북도보다는 충청도가 관리상 유리하다 싶어 전라북도 금산군을 충청남도로 편입(編入)시키고, 그 대신 전라남도 영광군 위도면(蝟島面)을 역사적으로 본 영지(領地)인 부안군(扶安郡)에 다시 편입시키는 조치를 취했다.”는 내용이다. 우리 부안군으로서는 잘 된 일이나 그 내면에는 그러한 정치적 계산이 숨겨져 있었다고 한다.

어쨌든 수명한 자태를 해무에 감긴 채 연연히 조선팔도에서 조기로 유명했던 위도의 참모습을 살펴보기로 하자.


식도ⓒ부안21


파장금ⓒ부안21

위도는 파장금(波長金), 진리(鎭里), 대리(大里), 벌금(筏金), 식도(食島)를 위시하여 상왕등(上旺嶝), 하왕등(下旺嶝), 치도(稚島), 거륜도(車輪島)로 이루어진 도서면으로 면적은 1414㎢ 이며 도서가 30개 (유인도 6개도, 무인도 24개도)로 이루어진 섬이다.

현재(2003)의 인구수는 1460명이며 주산물로는 김, 삼치, 멸치, 마늘, 약간의 활어와 낚시와 관광업에 종사하며 우리나라 농어촌의 일반적 쇠락 현상과 비슷한 경향을 보이나, 식도나 대리 마을 등은 멸치 생산으로 많은 어획고를 올리며 활력이 넘치고 있는 지역도 있다. 현 면사무소 소재지인 진리 마을은 옛날부터 진영(鎭營)이 있었던 곳으로 부근에는 많은 유물들이 남아 있고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고관들의 근신처나 휴양처로 그들이 남기고 간 시부(詩賦)나 역사적 유물이 많이 전해지기도 한다.

/邊山 小松  金吉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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