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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을 타고 바다로 들어가겠다"
| 2007·06·06 00:23 |
간재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친 왕등도 강학소 터, 1998년 간재학회 회원들이 왕등도를 찾았다. 건물은 이미 허물어지고 터만 남아 있었다.ⓒ부안21


위도의 역사와 문화


위도의 문화를 논하기 앞서 먼저 위도의 역사나 유래를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혹자들은 위도를 원래 죄인들의 유배지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유배지기도 하였으나 사실은 유배지라기보다는 고대 부족집단의 생활근거지이자 위치상 고대로부터 중국과 한반도, 일본을 잇는 국제 교역의 중심지였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곳이다.

그 근거로 최근 국립박물관이 주관이 되어 벌인 고대유물 발굴 작업에서 대형 석실분 20여 기와 고려시대 철제투구, 도자기, 백제의 도읍이나 평안도 일부에서 발굴되는 것과 유사한 고분의 크기 즉 큰 것은 장축이240cm, 너비 60cm, 벽면의 높이 60cm 규모의 석실분이 발견되었다.

그런가하면 「연세대사회발전연구소」는 심청전의 근원 설화인 전남 곡성군 오산면 관음사 연기설화의 고증 과정에서 인당수로 알려진 인단소를 위도의 유물이 발견된 곳에서 2km 떨어진 해역으로 비정하고 있다. 이는 심청이가 전남 곡성에서 선인들에 이끌려 섬진강을 따라 남해로 내려가 완도 청해진을 거쳐 다시 부안 쪽으로 북상해 중국으로 가던 도중에 이곳 위도 해역에 있는 인당수에 빠졌다는 설화의 내용을, 즉 인당수=부안설을 확인시켜 주는 대목이다.

또 다른 면으로 고찰해보면 위도는 삼한시대부터 어업의 전진기지였으며, 수군 진(鎭)이 설치된 곳으로 나라에서는 이곳 관아(官衙)에서 외국의 사신이나 상단을 접견하기도 했다. 이렇듯 위도는 고대부터 활발한 무역이 이루어진 곳이라는 것이 여러 논문에서 밝혀지고 있다.「김재운. 위도 지역의 지리적 연구 전북대 1988」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 볼 때 위도는 유배지나 귀양지라기보다는 무역의 거점지이거나 혹 가벼운 근신자의 근신처 또는 스스로 선택한 휴양지 정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참고로 위도에 유배된 인물은 고려 시대(1230) 팔관회 정란에 휘말려 8개월 간 위도에서 유배생활을 한 백운거사 이규보가 있고, 시어(侍御) 최함일(崔咸一)이 있다. 또 조선 영조 때 이흥종, 이명의, 조선 숙종 때 정찬, 유면경이 있다.

그런가하면 간재 전우는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강제로 맺어지자, 나라의 강상(綱常)을 바로 세울 것과 보호조약의 부당함, 그리고 나라안의 오적(五賊)을 참수하라는 내용의 상소문 「청참오적(請斬五賊)」을 올렸으나 오적들은 오히려 간재를 죽이라고 고종을 윽박질렀다. 그 후에도 2차, 3차 상소를 올렸으나 끝내 나라는 기울고 말았다. 1908년 간재는「공자는 춘추전국시대의 어지러운 세상에서 "道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을 타고 바다로 들어가겠다."라고 하였으니 나도 바다로 가겠다.」하고 망국의 한을 품은 채 서해에 외로히 떠 있는 섬 위도의 왕등도로 건너가 수천 명의 제자들을 가르치는데만 전념하였다.

아래의 시는 고려말에 설문우(薛文遇)라는 사람이 위도(猬島: 蝟島)로 귀양가는 시어(侍御) 최함일(崔咸一)을 전송하는 시(詩)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부안현의 산천(山川) 조와 《동문선(東文選)》에 보인다.

위도(猬島)로 귀양가는 시어 최함일을 전송하며(送侍御崔咸一貶猬島)

        곧은 절개라야 참 오부(烏府: 어사대)인데
        변변찮은 재주로 나는 치관(豸冠: 어사)을 더렵혔네
        
        수놓은 비단 같은 그 재주야 어찌 같으랴만
        뱃속에 들어 있는 보배 서로 쏟았었네
        
        태평성대에 비록 도움 못되나
        뭇 동료들 모두 다 눈높이 보았네
        
        임금을 착하게 하려는 마음 버리지 못해
        나라 걱정에 뒤 귀밑털 헛되이 시드는구나
        
        간사한 무리들은 장우(張禹) 따위가 많은데
        서로 알아주는 비간(比干)같은 이는 너무 적었네
        
        이때에 갈라져서 그대는 가고 나는 머무르니
        어느 곳에서 평안함을 물을거나
        
        시루는 깨어졌는데 돌아볼 이 누구인고
        하늘은 높아도 쉬 들을 수 있다네
        
        용천산(龍泉山)은 옛 산 그대로이고
        위도(猬島)에는 신관(新官)이로세
        
        두 땅에 외로이 뜬 둥근 달 비치는데
        조각배에 드리우리 낚싯대 하나
        
        다시 만날 날이 곧 있으리니
        잘 가소 가거든 밥 잘 자시소

        直節眞烏府        微才忝豸冠
        豈同腸錦繡        相倒腹琅玕
        盛代雖無補        群僚盡聳觀
        致君心不分        憂國鬢空殘
        侫首多張禹        知音少比干
        此時分去住        何處問平安

/邊山 小松  金吉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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