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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d Savers-씨앗을 지키는 사람들
작은 씨앗 하나에 담겨있는 큰 희망
| 2007·07·11 02:04 |

2006년 1월2일 아침, 잔뜩 긴장을 하며 공항으로 떠났다. 학교 선생님의 반 권유와 반 명령(?)으로 계획된 이번 호주로의 여정은 단순히 여행이 아닌, 보고, 듣고, 배우고 와서 한국에서 써먹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중대한(?) 사명을 가지고 떠나는 길이었다. 그런데 뭘 보고 듣고 배우는 것이냐?(뭔데 이리 폼을 잡는 것이여?)
그것은 바로... 씨앗이다!

다국적 종자회사에 제동을 걸고 전 세계적으로 토종종자를 모으며 토종종자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단체가 호주에 있다고 하여 찾아가 보게 되었다. 공항에 내리니 한국과는 정반대로 한 여름이다. 신기하다. 오~ 나무들도 푸르고 우리나라에는 없는 식물도 많다. 거기다 우리(나와 학교 학생이 한 명 같이 감)가 간 곳은 호주에서도 유명한 해안 관광지라 주위를 둘러봐도 사람들이 거의 반나체였다. 띠요옹~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도착한 Seed Savers 센터는 마을 번화가에서 좀 떨어진 조용한 곳에 있었다. 자유롭고 색다른 분위기에 주눅이 들고 긴장한 우리들을 따뜻하게 맞이한 사람들은 주드 아주머니와 미셸 아저씨. 그곳을 이끌어가고 계시는 분들이다. 우리는 이 두 분에게 한 달 동안 신세를 지며 씨앗에 관한 많은 것을 배웠다.



Seed Savers 센터는 우리가 잔뜩 부풀어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평범한 주택이었다. 거기다 실질적인 사무실은 방 한 칸에 컴퓨터 두 대와 책꽂이에 꽂혀있는 자료들, 그리고 벽면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씨앗 서랍장(일명 종자은행)과 몇 개의 씨앗 통이 전부였다. 일 하는 사람도 주드, 미셸 부부와 지금은 휴가 중인 직원 한 사람뿐이라고 하였다. ‘호주 전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씨앗을 수집하며 활동했다는데 이것뿐인가?’ 비행기 값도 아깝고 앞으로 있을 한 달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걱정은 겉모습만 보고 쉽게 판단하는 나의 얕은 생각에 지나지 않았다.
Seed Savers는 토종 종자를 구하고 지키는데 애를 쓰는 단체이지만 단지 그 일만 하는 것이 아니다.


Seed Saver'의 미셀&주드 부부

1968년 비영리기구로 시작된 이 단체는 단지 종자은행의 기능뿐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씨앗의 관리와 보급, 그리고 교육 활동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뜻의 동참하고 여러 지역에서 그 지역에 맞는 토종 종자를 키울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 Seed Savers센터가 중심이기는 하지만 독자적으로 모든 것을 관리하지 않고 각 지역과 세계 곳곳에 기관과 모임, 쉽게 말하자면 직영점을 두고 각 기관들이 그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지역에 맞는 씨앗을 길러내고 또 길러낸 씨앗을 가지고 서로 교환 할 수 있도록 연결시켜주는 소식지를 발행하거나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씨앗과 농사기술, 생활의 지혜 등을 나누며 어울릴 수 있는 모임을 만든다. 이렇게 생겨난 모임들은 크고 작은 형태로 다양하고 숫자도 점점 늘어나 이제 호주 전역의 63개의 모임이 되었다. 이 모임들도 개별적이 아니라 서로 쉽게 교류할 수 있도록 연결되어있다.


호주 전역에 연결된 씨앗 네트워크를 표시해 놓은 지조

Seed Savers의 운영은 주로 소식지 구독료와 기부금으로 꾸려지고 정부 기관에도 가끔 기획안을 제출하여 자금을 따온다고 한다. 하지만 가장 실질적인 운영의 밑바탕은 역시 많은 자원 봉사자들의 활동과 회원들의 활발한 참여와 교류가 아닐까 생각한다. 기구가 출발한 이래 5,500종 이상의 식물이 씨앗은행을 거쳐 갔고, 만 명 이상의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관련을 맺고 있다고 한다. 또한 그들이 정기적으로 내는 소식지를 통해 1,300여종의 씨앗이 구독자들에게 전해진다. 그러니까 내가 본 사무실은 방 한 칸이 아니라 호주 전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가서 처음 한 일은 씨앗에 대한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라, 밭일이었다. Seed Savers 사무실 주위에는 1,200여평의 정원과 밭이 있다. 밭에서 나는 채소는 그날 그날 식탁에 오르는 메뉴의 주재료가 되는데 미셸 아저씨는 텃밭이 그들의 슈퍼마켓이라고 했다. 실제로 가서 보니 채소뿐만이 아니라 향신료가 되는 허브, 텃밭과 정원 구석구석에서 피어나는 여러 가지 버섯, 대나무 밑에서 쏙쏙 올라오는 죽순, 바나나, 레몬, 아세로라 등의 과일 나무, 집 안을 화사하게 꾸며주는 많은 종류의 꽃…. 밭에서 얻을 수 없는 고기 종류나 해산물은 Seed Savers의 회원들이 나눠 주기도 한다고. 이렇게 읊기만 해도 참 풍요롭다. ‘아니, 그런데 밭이며 정원이며 농약도 치지 않고 제초제도 뿌리지 않으면서 그 넓은 정원과 텃밭을 어떻게 관리한대? 사람도 없는데….’ 그렇다고 사무실 일이며 손님맞이하는 일이며, 마침 시작하는 사무실 개조 일로 바쁜 두 사람은 하루 종일 밭에만 있을 수도 없는 일. 거기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도 삽 들고 호미 들고 낑낑대는 일이 아니고 아침과 저녁에 잠깐 나가서 듬성듬성 나있는 풀 뽑기, 작물의 천적인 달팽이 잡기, 물주기 등의 쉬운 일이었다. 여름내 풀 매느라 고생인 학교 사정을 떠올리면서 의아한 생각이 들어 지내는 동안 살펴보고 물어보면서 손쉬운 정원 관리법을 배웠다.  


씨앗 하나를 심으면 그 씨앗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준다.

먼저 흙을 비옥하게 한다. 인분이나 마을 주변에서 얻어온 말똥을 나무나 풀의 부산물들과 함께 발효 시킨 것과 어분 등을 밭에 뿌려준다. 그 후에 하는 작업은 따로 땅을 갈아엎거나 뒤집지 않고, 삼지창으로 땅에 구멍을 내어 공기가 통하게 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나무 멀칭. 우리나라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잘 썩는 멀칭 재료가 볏짚인 것처럼, 이 나라에서는 야자수나 파파야 나무를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얻어 온 나무는 파쇄기에 넣어 나무칩을 만들 수도 있지만, 그보다 그냥 동강내어 잘라 밭이나 정원 여기저기에 던져(?)놓는데, 미생물이나 작은 벌레들이 들어와 살기가 좋다는 이유다. 땅이 비옥하니 풀이 나도 쉽게 뽑을 수 있고, 왠만한 풀은 멀칭으로 막을 수 있다. 멀칭한 나무도 결국에는 썩어서 땅으로 돌아가니 따로 걷어낼 수고도, 쓰레기 고민도 없다.


창고에 잘 정리된 농기구, 기계보다 도구를 사용하는 미셸 아저씨는 정리도 깔끔하게 해놓았다.

말 그대로 텃밭인 그들의 밭은 집 바로 옆에 두고 잠깐 나가 관리를 하거나 수확을 할 수 있도록 하여 시간과 수고를 줄였다. 밭을 가꾸는 방법도 우리와 다르다. 한 밭에 한 작물만 쫙 심는 우리나라 농사법과는 다르게 책상 하나보다 조금 더 큰 이랑을 몇 개 만들어 한 구획에 여러 가지 작물들을 심는다. 말로만 듣던 혼작이다! 학교에서도 실험한다고 몇 번 혼작 밭을 만들어보기도 했지만 한 작물만 심어 재배하는 것보다 관리하고 수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별다른 성과도 못 거둔 채 결국은 풀밭만 하나 더 만드는 꼴이 되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렇게 실제로 하고 있는 것을 보니 다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기에도 쉽고 듣기에도 편한 방법들이지만, 어디 이러한 기술들이 그냥 하루아침에 나왔을까.
기계를 쓰고 비료와 농약을 쓰며 많은 양을 쉽게 생산해 내는 것이 손쉬운 방법이고 더 많은 이윤을 가질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기본으로 하는 현대의 농업 현실에서 전통적인 농사법을 고수하고 여러 농부들의 지혜를 모아 소규모의 농장에서 다양한 작물들을 재배하는 미셸아저씨의 농사법은 노동의 기쁨을 중요시하고 자연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을 바탕에 두고 있다.


채종한 씨앗을 정선하는 모습

우리는 그 곳에서 채종도 하고 씨앗으로 쓸 것을 고르는 정선 작업도 하였다.  

씨앗 채종에 관한 실습을 할 때에도 어디 따로 만들어진 채종밭으로 멀리 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텃밭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슈퍼마켓에, 채종밭에, 교육장까지 그야말로 멀티인 셈이다.
씨앗을 채종하는 일이란(채종을 모르는 우리들에게는) 번거롭고 까다로운 일이다. 기후변화에 민감해야 하며 작물의 생육상태에 따라 병든 것이 있는지,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은 어떤 것인지 찜(?)해두고 눈여겨보아야 한다. 그 뿐만 아니라, 같은 과(科)라도 다른 품종이 옆에 있으면 쉽게 교잡되는 작물들은 서로 수정이 되지 않도록 교잡방지 대책을 세워야한다. 채종을 한 다음에도 알이 꽉 들어차고 건강한 씨앗을 골라내는 일, 잘 말려서 습기나 빛으로부터 차단하여 보관하는 일까지 씨앗을 얻는 일은 이렇게 손이 많이 가고 신경이 많이 쓰이는 작업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옛날의 농부들은 그 일이 번거로운 일이 될 수 없었다. 이듬해 농사를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할 소중하고 경건한 작업이었다.
산업사회가 되면서 농업도 점점 대규모로 바뀌고 화학적이고 기계적인 시스템이 되어가며 씨앗은 점점  사람의 욕구에 맞춰서 교잡되고 변형되기 시작하였고 씨앗이야말로 앞으로 수익성이 보장되는 매력적인 상품이 될 것이라는 전망에 다국적기업들은 조금이라도 더 씨앗의 종류를 많이 확보하기위해 치열한(그리고 무자비한) 경쟁을 벌여왔다. 직접 씨앗을 채종해오던 농부들도 점점 사라지고 결국 우리들은 매년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르는 씨앗을 구입해야만 하는 현실 앞에 놓여있다. 덕분에 채종을 해야 하는 수고도, 씨앗을 정선하여 보관하는 수고도 없어졌지만, 그 대신 우리는 획일적이고 병충해에 약하고 어딘가 유전자가 뒤틀린 씨앗을 어쩔 수 없이 사야하는 것이다.  

주드 아주머니와 미셸 아저씨는 이러한 다국적 기업의 횡포에 대항하고 보다 많은 토종 종자를 지켜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씨앗을 모으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도 모으고 책도 모은다. 또 아낌없이 모은 것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사무실 한켠에 비치된 씨앗은행, 크기는 작지만 그 영향력은 호주 뿐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 미친다. 오른쪽은 씨아의 정보가 빼곡히 적힌 씨앗봉투

Seed Savers 사람들이 활동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역성과 다양성을 살리는 일이다. 그 지역의 기후 환경에 가장 잘 맞는 건강하고 맛있는 토종종자를 길러내는 것이 씨앗의 고유 성질을 잘 지켜낼 수 있다고 한다. 마음만 먹으면 겨울에도 수박을 먹을 수 있는 이 시대에 기후풍토에 맞춰서 재배하는 것이 답답하다면 답답할 수도 있겠지만, 건강하고 지속적으로, 진정으로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길이 아닐까.

  그런데, 한 달 가까이 지내면서 씨앗에 대해, 그리고 씨앗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활동에 대해 배우면서 과연 우리나라에는 토종종자를 지키려는 노력들이 얼마나 있을까 궁금해졌다. 또, 키우기 쉽게 교잡되어 나온 씨앗에 익숙해진 내가 토종 작물을 키워서 씨앗을 얻는 일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명, 두 명 사람이 모이고 또 씨앗이 모이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씨앗만 심으면 땡이 아니라, 씨앗을 심어 작물을 키우고 거두고, 음식을 만들고, 사람들과 나누고 어울릴 수 있는 문화가 생겨나고, 그 문화 속에서 또 다른 삶의 지혜와 기술을 나눌 수 있다면 작은 씨앗 하나에 큰 희망이 담겨있는 것 아닌가. 농촌마저 대량 생산과 기계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작물도 상품의 가치로밖엔 보지 않는 요즘, 씨앗이 가지는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며 그것을 키워내는 농부의 경건한 마음이 나와 이웃을 돌아보고 자연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며 희망을 갖는다.

나는 이번 호주 연수에서 <씨앗을 지키는 마음>이라는 씨앗을 가지고 왔다. 가져가라는 많은 씨앗이 있었지만 그것이 가장 우리에게 필요한 씨앗인 것 같았다. 이제는 심는 일만 남았다.

/글·물레나물 조혜진
조혜진 물레나물님은 현재 홍성풀무학교 전공부에서 원예를 가르치고 있다.

이 글은 풀꽃세상을위한모임이 만든 열두번째 책 '풀씨"에서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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