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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의 역사인물, 부안 인물학의 기반"
[고길섶의 부안여지도]인문학의 발견과 ‘부안학’ 생각-1
| 2014·04·08 09:20 |
▲부설전(浮雪傳.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40호)
부설전은 월명암을 창건한 부설거사에 얽힌 전설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 형식의 책으로 저자와 연대는 미상이다.



인문학, 사람 사는 꼴이 어떤가

국립국어원에서 편찬하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인문학(人文學)을 “언어, 문학, 역사, 철학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설명한다. 더 이상의 설명은 없다. 인문학이 그리 짧은가. 우리의 국어사전에는 개념들의 역사적 정보가 없다. 어찌 되었건 최근 부안에도 인문학 바람이 불어오고 있는 모양이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인문학’이라는 말만 빌어오고 있는 형편이지 학문적 지식담론을 생산하는 그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이다. 굳이 인문학이라고 안해도 그런 류의 강좌들은 때때로 있어 왔다.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부안항쟁 당시 촛불집회 광장에서 얼마나 많은 강연들이 있었는가. 그것들 역시 인문학적 사유의 한 모습들이었다. 행동하는 인문학, 실천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인문학이었다.

그러니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부안에서의 인문학이라고 한다면, 우선 지역의 삶이라는 장소성의 문제를 빼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역학적 사유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따라서 일종의 ‘부안학’으로서의 인문학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똑같이 설명하는 교본으로서의 지식담론이 아니라 지역적 사유와 접속하는 창의적 지식담론이어야 할 것이다. 다시말해 부안이라는 지역적 삶 속에서 인간의 가치의 문제들을 발견하고 재구성하여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것이 부안에서 인문학을 사유하는 하나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겠다.


▲반계수록반계 유형원이 부안의 우반동에서 19년의 세월에 걸쳐 집필한 필생의 역작으로 총 26권에 그의 개혁사상과 이상적 국가 건설안을 담은 대작이다.<국립전주박물관 자료>

몇 년 전의 일이다. 격포에 사는 한 지인이 당시 하는 말이 맑스 책을 읽고 있다고 했다. 지금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참으로 ‘뜬금없는’ 짓거리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철지난 사상서를 읽는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겠지 했다. 철지난 정도가 아니라 요새 살벌한 정세로 치자면 ‘종북’으로 신고당하지나 안했는지 모를 일이다. 맑스가 철학을 뭐라고 했던가. 철학의 임무는 해석이 아니라 실천의 문제라고 했다. 실천도 그냥 실천이 아니라 세상을 확 뒤집어버리자고 했다. <공산주의 선언>이나 <자본론>을 써 부르주아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면서 인간의 해방을 꿈꿨다. ‘빨갱이’의 원조 아닌가.

철이 지났든 안 지났든 인문학적 사유는 동서가 없고 고금이 없다. 동서고금으로 통하되 오늘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곳에서의 지혜를 모으도록 한다. 지인이 맑스의 무엇을 읽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격포에서 <자본론>을 읽는다는 것은, 한국사회와 연계해서일 수도 있고, 아니면 ‘글로벌’이라고 떠들어대는 지구촌을 생각해서일 수도 있고, 아니면 부안-격포의 삶을 들여다보면서일 수도 있다. 동서고금의 어떤 책을 읽든 그 사유의 세계는 ‘지금-여기’라는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문학적 사유의 거처가 그렇다는 것이다. 지인이 그런 류의 책에 빠져들었다면 지금-여기에서 인문학적 목마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여기에서 사람(人) 사는 꼴(文)이 어떤가(學), 그 성찰을 하고 실천적 지형을 모색해보는 것, 그것이 바로 인문학 아닌가. 언어이건, 문학이건, 역사이건, 철학이건.

부안의 역사인물, 부안 인물학의 기반

부안에서의 인문학 강좌는 무엇보다도 부안학의 발견과 구성에 토대해야 할 일이다. 부안학은 이미 그 자산들이 역사적으로 존재해왔다. 나는 발간 진행중인 부안군지에 부안의 역사인물을 다루는 글을 썼다. 이 인물들 중에서 부안이라는 장소성이 고려되는 역사적 사유들을 부안 인문학 혹은 부안학의 기반으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부안의 역사인물이라고 할만한 지역적 근거에 대해서 부안에서 태어났거나 그렇지 않았거나 또는 부안에서 짧게 살았을지언정 부안에 역사적 상징을 크게 남겨놓은 인물을 들었다. 그 인물들 중 월명암의 창건자로 알려진 부설거사(7세기), 대몽 외교문장가로 명성을 떨친 김구(1211-1278), 시문가무에 능한 명기 이매창(1573-1610), 실학의 대표자이자 사회정치 사상가 유형원(1622-1673), 조선 말기 대유학자 전우(1841-1922), 동학의 대접주 김낙철(1858-1917), 원불교 창시자로 변산 제법성지를 구축한 박중빈(1891-1943), 공산주의 운동가(1894-1986), 한국의 대표 서정시인 신석정(1907-1974), 한국현대사 비극의 희생자 최순환(1911-1950), 비전향장기수 허영철(1920-2010), 달마그림의 대가 이명우(1923~2005) 등은 부안에 삶의 흔적들을 남겼으며 부안학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는 이들의 업적이나 활동 그 자체보다도 생각(사상), 삶의 방식, 의미가 무엇이었는지에 주목했다. 역사적 주체성을 중시한 것이다. 이를테면, 부설거사를 보자. 1990년에 발행한 <부안군지>에서는 부설거사를 부안의 역사인물로 선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부설거사가 산상무쟁처(山上無諍處)의 참선도량으로 유명한 월명암을 변산에 창건하였을 뿐만 아니라 재가신도로서 <부설전> 설화를 남기는 등의 종교사상적 족적을 부안에 커다랗게 남겼다.


▲반계유적지(전라북도 기념물 제22호)


▲부안이 낳은 한국의 대표 서정시인 신석정(사진출처 : 「난초잎에 어둠이 내리면」 1974. 7.20 지식산업사 발행)


역시 1990년 <부안군지>에서 다루지 않은 박중빈을 중요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광이 그가 태어나 교리를 터득한 원불교의 근원성지인 반면 부안의 변산은 그가 5년간 체류하며 교리를 선포한 제법성지로 중요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는 월명암과 실상사지 일대(실상초당터, 석두암터, 구곡로, 정산로, 용두샘 등)에 흔적들을 남겼다. 특히 그는 제자들에게 “변산구곡로(邊山九曲路)에 석립청수성(石立聽水聲)이라 무무역무무(無無亦無無)요 비비역비비(非非亦非非)라”(변산구곡로에 돌이 서서 물소리를 들으니 없고 없다 하는 것도 또한 없고 없으며 아니고 아니다 하는 것도 또한 아니고 아니로다)하면서 이 뜻을 알면 도를 깨달은 사람이라 했다.

우리는 부설거사와 박중빈(그리고 세간의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다는 부사의방장 등지를 포함해서)을 통해서 변산이라는 거대한 성소에 대한 부안학적 관점에서 재조명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인물들은 그 자신 자체로서의 의미가 있으면서도 그들이 흔적을 남겼던 장소, 변산이라는 장소성은 또다른 의미체계를 생산한다. 변산은 자연생태적 가치와는 별도로 그 공간지형들에서 고금으로 사람들이 살아왔고 역사적으로 탁월한 인물들이 거처하며 독자적인 사상을 품어왔던 인문학적 텍스트이다.

부안의 역사인물들은 부안이라는 장소성에 기반했을지라도 그들의 생각은 당대 사회의 보편적 독자성을 획득하려 했다. 보안면 우동리 산중턱에서 기거했던 유형원이 대표적이다. 32세의 젊은 나이에 조부의 고향에 내려와 평생을 살며 사상체계를 집약했고 그것은 <반계수록>으로 드러났다. 그는 현실사회와 등지지 않았다. 유형원이 살았던 시기는 임진왜란 및 병자호란 등과 함께 천재지변의 높은 빈도수 등으로 국력이 고갈되었고 경제는 파탄지경이었으며 백성들의 삶도 피폐하였다. 그는 우반동에 거주하면서 서울에 자주 출타하였으며 전국의 곳곳을 유람, 농촌 현실을 직접 체험하고 고금의 저술 수만 권을 읽어가며 이에 기반하여 현실사회 구제, 즉 사회 및 국가체제의 전반적인 개혁사상을 주창하였다. 다산 정약용은 임금을 보좌하여 나라를 다스려야 할 재목이라 칭송했다. 조선사회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농촌 현실을 파고든 것이다. 유형원의 삶과 사상 역시 부안학의 문서고이다.

한국의 현대적 삶을 살아가는 생존자 혹은 목격자로서의 현실을 격정적으로 표현했던 시인 신석정은 새롭게 해석되어야 할 인물이다. 그는 목가시인 혹은 서정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왔지만, 참여성을 제거하고 음풍농월하는 순수서정시를 거부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시에서 살고 싶은 욕망에서 발로하는 행동의 일단”, “‘생활’이라는 무서운 ‘현실’을 직시”하면서 “생활이 아니면 안될 것”이라 말해온 그의 시 정신을 탐구해볼 필요가 있다. 1952년 4월에 쓴 ‘귀향시초’(歸鄕詩抄)라는 시에서도 그의 시 정신이 잘 표현되었다. “껍질을 베낄 소나무도 없는 매마른 고장이 되어서 마을에서는 할머니와 손주 딸들이 들로 나와서 쑥을 뜯고 자운영순이며 독새기며 까지봉통이 너물을 마구 뜯으면서 보리고개를 어떻게 넘겨야겠느냐고 산수유꽃같이 노란 얼굴들을 서로 바래보고 시서겊어 합데다.”삶에 대한 탐구, 이것이야말로 인문학적 사유의 의지여야 할 터이다.(다음으로 이어집니다.)

/고길섶(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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