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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반핵운동은 '사태'가 아닌 '봉기'였다
 2003.08.13ⓒ부안21


동학농민혁명운동의 발단과 전개과정 비슷해

  벌떼처럼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들고 일어나는 것을 두고 봉기라 한다. 1894년 전라도 고부군에서 시작된 동학계 농민의 혁명운동은 규모와 이념적인 면에서 정치개혁을 외친 하나의 혁명으로 간주하는 한편, 농민들이 궐기하여 부정과 외세에 항거해 갑오농민전쟁이라고도 불린다.

  동학농민혁명운동은 그 성격을 어떻게 규정해야 되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양한게 사실이다. '동학농민혁명운동' '농민반란' '동학농민운동' '동학혁명' 등 다양한 형태의 명칭으로 후세의 역사학자들은 그 옛날 과거의 역사를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형태상으로는 농민전쟁이지만 역사적 사회적 성격에 있어서는 농민혁명운동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농민혁명이라는 명칭에 운동이 붙은 것은 이 운동이 완전히 성공하여 집권을 하지 못하고 운동으로 그쳤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혁명이든 혁명운동이든, 농민반란이든 농민운동이든 간에 학정에 시달리던 백성들이 떨치고 일어나 집단적으로 펼친 이 저항운동은 일종의 민중봉기가 틀림없다.

  고부농민들이 봉기를 일으킬 수 밖에 없었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주지하다시피 조선 후기의 탐관이었던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 때문이 아니었던가?

  고부군수 조병갑은 만석보(萬石洑)를 증축할 때 군민에게 임금도 주지 않고, 수세를 징수 착복하였으며 무고한 사람에게 죄목을 씌워 재산을 착취했다.

  한편, 태인군수(泰仁郡守)를 지낸 부친의 비각을 세운다고 금품을 강제 징수하는 등 온갖 폭정을 자행했다. 이에 격노한 군민들은 군수의 불법에 항의했으나, 조병갑은듣지 않고 오히려 학정을 가중시킴으로써 이듬해 동학농민운동을 유발한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고부농민들의 민중봉기였던 동학농민혁명운동의 발단과 전개과정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속칭 부안사태로 일컬어지는 부안군민들의 반핵운동과 비슷한 점이 많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부안반핵운동의 발단은 김종규 부안군수가 군의회에서 부결된 위도 방폐장 유치 청원을 들고 독단적으로 산자부에 신청한데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부안사람들은 군수 김종규를 갑오농민전쟁을 일으킨 고부군수에 빗대어 '제2의 조병갑'이라 칭한다.

  2003년 5월 시작돼 약 2년 정도 전개된 부안군민들의 반핵운동은 비록 봉건적 모순과 민족적 모순을 극복해 근대사회로 나아가려는 반봉건 반제국주의 민중운동으로 확산된 갑오농민전쟁과 같은 전국적인 규모와 형태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군수의 독재에 항거하고, 도지사와 대통령이 공권력을 동원해 자행한 무자비한 폭력진압에 맞서 싸운 시골 사람들의 항쟁이자 생존권 투쟁이었다.

  그리고 동학농민혁명운동이 소빈농층이 주체가 된 사회변혁운동이었다면, 부안항쟁은 농민과 어민들이 주체가 된 핵없는 세상을 꿈꾸는 반핵운동이자 환경운동이었으며 실종된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민주화운동이었다.

  동학농민혁명운동과 비교해 부안항쟁의 형태나 성격을 규정하는데 있어서 그밖의 또 다른 의미있는 시도들이 이루어질 수 있겠지만, 적어도 부안반핵운동을 일컬어 부안사태라 칭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광주민주화운동이 올해로 25주년을 맞았다. 지난 25년 동안 정부와 광주시, 그리고 5월단체와 언론 등을 통해 등장한 5·18의 명칭은 광주사태, 광주민주화운동, 5·18 민주화운동, 5·18 민중항쟁, 5·18 광주민중항쟁, 5·18 민주항쟁, 5·18 광주의거, 광주오월민중항쟁, 5·18 광주항쟁, 5·18 사태, 5·18 사건, 5월 항쟁 등 어림잡아도 10여개가 넘는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5·18은 80년 5월21일 당시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광주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합세, 18일부터 연 4일째 소요사태가 발생하고 있다"고 발표하면서 군부에 의해 처음에는 '폭동'으로 규정됐다고 한다.

  이후 독재정권인 전두환 정권이 막을 내릴 때까지 불순분자들이 체제 전복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광주사태로 불렸다는데, 6공화국 때인 1988년 민주화합추진위가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명명하면서 이 명칭이 일반화됐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명칭이 일원화되지 않고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 국민정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명칭을 일원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고, MBC 드라마 <제5공화국>이 5·18을 '광주사태'로 표기하자 네티즌들은 "광주사태라니 무슨 망발인가"라고 성토하기도 했다.

  부안반핵운동을 일컬어 더 이상 부안사태로 부르는 걸 삼가야 될 것이다. 한때 5.18을 불순분자들이 체제 전복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광주사태로 불렀듯이 참여정부의 무자비한 폭력진압에 저항한 부안의 반핵 투쟁이, 불순분자들이 노무현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시도한 사태란 말인가?

  광주폭동과 광주사태로 불리던 5.18이 세월이 흘러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이름을 얻었듯이, 이 나라 대한민국에 부안인들이 단 한명이라도 살아 남는 한 지금까지 별생각없이 사용해 온 부안사태라는 용어는 언젠가는 보다 신성하고, 보다 성스러운
명칭을 얻게 될 것이다.

  어쨌튼 우선은  '부안사태'라는 명칭의 사용을 가급적 삼가고 대신 '부안봉기'로 불러 주는 것이 경찰계엄으로 불리는 국가폭력에 맞서 싸운 부안군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부안봉기'라는 명칭이 어색하고, 마땅하지 않다고 여겨진다면 적어도 '부안반핵운동'이나 '부안민주항쟁'으로 명칭을 바로 잡아야 될 것이다.

  '부안사태'라는 언론보도를 접할 때마다 드는 생각을 정리해 봤다.


/서주원/e사상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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