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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3세기 말경 중국 진(晋)나라의 진수(陳壽)가 편찬한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 마한(馬韓)조에 마한의 부족국가 54개국 이름이 나오는데 그 중의 하나인 지반국(支半國)이 지금의 부안지방으로 비정되고 있으며, 따라서 삼한시대에 부안지방은 마한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삼국유사의 기록에는 “신라의 시조 혁거세가 즉위한지 19년 임오(기원전 39)에 변한사람이 나라를 바치면서 항복해왔다. 「신당서」와 「구당서」에 이르기를 ‘변한의 후손들이 낙랑땅에서 살았다.,고 하였으며, 「후한서」에 이르기를 '변한은 남쪽에 있고, 마한은 서쪽에 있고, 진한은 동쪽에 있었다.‘고 하였다. 최치원은 말하기를 '변한은 백제이다.‘라고 하였다. 「본기」를 보면 온조가 일어난 것은 홍가(鴻嘉)4년 갑진(기원전 17)이라 하였은즉 혁거세나 동명보다도 40여년이 뒤떨어진다. 그런데 「당서」에서 '변한의 후손들이 낙랑 땅에 살았다‘고 한 것은 온조의 계통이 동명에서 나왔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아마 낙랑땅에서 어떤 인물이 나서 변한에 나라를 세우고 마한 등과 함께 대치한 것은 온조의 전에 있었던 일인 모양이요 그 도읍한 곳이 낙랑 북쪽에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혹자는 구룡산(九龍山)을 또 함부로 변나산(卞那山)이라고 한 까닭으로 고구려를 변한이라고 하는 자가 있는데 대체로 잘못이다. 마땅히 옛날 어른들의 말을 옳다 해야 할 것이다. 백제 땅에는 원래 변산(卞山)이 있었으므로 변한이라고 한 것이다. 백제 전 성시대에는 호수가 15만 2.300호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동국여지승람」의 전라도조에는 ‘본래 변한 땅인데 뒤에 백제 땅이 되었다(本卞韓之地 後爲百濟所有).'라 하였다. 正史가 아닌 기록들이긴 하지만 이들 기록들이 사실이라면 부안지방은 원래 변한이었는데 뒤에 마한땅이 되고, 백제가 점차 남하하면서 마한땅을 병합하였는지도 모른다.

백제시대에는 지금의 부안읍 지역이 개화현(皆火縣), 보안 지역이 흔량매현(欣良買縣)이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보인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인 경덕왕 16년(757)에 개화현을 부령(扶寧)이라 고쳐 부르고 혹 계발(戒發)이라고도 하였으며, 고부군(古阜郡)의 속현이었다. 흔량매현은 희안(喜安)이라 하였으며, 역시 고부에 속하였다. 고려초에 희안현을 보안현(保安縣)이라 다시 고쳤으며. 별호를 낭주(浪州)라고도 하였고, 부령의 별호는 부풍(扶風)이라고도 하였다. 고려말 우왕 때에는 부령현과 보안현에 감무를 두었다.

조선시대의 군현제도(郡縣制度)는 태종 때에 그 대강이 확립되고, 세조 때에 그 일부가 수정되었으며, 그 내용이 그대로 성종 15년(1484)에 편찬된 「경국대전」에 수록되었다.「경국대전」에 의하면 조선 건국을 2都와 8道 아래에 4府, 4大都護府, 20牧, 44都護府, 82郡, 175縣을 두었다.

부안의 경우, 태종 14년(1414)에 부령현과 보안현을 합하였다가 그 이듬해 태종 15년에 다시 분리하였으며, 같은해 8월에 다시 합하였다가 이듬해인 태종 16년(1416)에 다시 분리, 같은해 12월에 다시 합쳐 그 이름을 부령현의 부(扶)자와 보안현의 안(安)자 한 자씩 따서 부안(扶安)이라 했다. 그 이듬해 태종 17년(1417)에 흥덕진을 없애고 이를 부안으로 옮겨 부안진(扶安鎭)이라 하고 병마사(兵馬使)겸 판사(判事)를 두었다가 세종 5년(1423)에 첨절제사(僉節制使)로 고쳤으며, 부안진의 군영은 지금의 하서면 장신포 남쪽에 두었다. 그 후에 현감을 두어 다스리게 하였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각 군현에 방(坊)을 두었는데 부안현에는 도동방(道東坊), 상동방(上東坊), 하동방(下東坊), 서도방(西道坊), 염소방(鹽所坊), 일도방(一道坊), 이도방(二道坊), 상서방(上西坊), 하서방(下西坊), 우산내방(右山內坊), 좌산내방(左山內坊), 남상방(南上坊), 남하방(南下坊), 소산방(所山坊), 입상방(立上坊), 입하방(立下坊), 건선방(乾先坊)의 17방을 두었다.

부안현이 부안군으로 불리게 된 것은 고종 32년(1895) 전국의 부(府), 목(牧), 군(郡), 현(縣)의 명칭을 군(郡)으로 통일하면서 부터이다.

1910년 일본의 침탈로 인해 나라가 망하니 일제는 같은해 10월 1일부터 입법, 사법, 행정 등 나라의 주권을 장악했다. 이후 일제는 전국 8道를 13개 道로 개편하면서 전라도를 북도와 남도로 분리하니 부안군은 전라북도에 속하게 됐다.

1914년에 일제는 전국의 행정구역을 대대적으로 개편하였는데 이웃한 고부군(古阜郡)을 없애고, 고부군의 백산(白山), 거마(巨麻), 덕림(德林)의 3개면을 부안군에 편입시키고, 위도는 영광군에 비안도는 옥구군에 떼어 주었다. 그리고 부안군 17개 방을 통폐합하여 10개의 면(面)으로 만들었다. 개편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부령면 : 도동방, 하동방
동진면 : 상동방, 일도방, 이도방
행안면 : 남상방, 서도방, 염소방
상서면 : 상서방
하서면 : 하서방, 상서면에 청림, 남수동, 남성동, 신적리를 주고, 새재, 불무 두 마을은
지금의 변산면으로 주었다. 그대신 상서면의 승평리가 하서면에 편입 되었다.
산내면 : 우산내방과 좌산내면을 합침
줄포면 : 건선면을 이름만 고침
보안면 : 입상방과 입하방을 합침
주산면 : 남하방과 소산방을 합치고, 고부에서 덕림방이 편입 됨
백산면 : 고부군의 거마, 백산의 두 방과 덕림의 일부를 합침

1943년 부령면이 부안읍으로 승격되어 10개 면에서 1읍 9면으로 되었다. 그러다가 1945년 8.15광복을 맞이했고, 이어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는데 그때에 변동은 없었다.

1963년 1월1일자로 전남 영광군에 속해 있던 위도(면)가 부안군으로 편입되어 부안군은 1읍 10면이 되었다.

1978년 계화도간척공사의 완공으로 3,968ha의 면적이 늘어났으며, 1983년 2월 15일자로 계화면이 신설되었다. 그리고 산내면 진서출장소가 면으로 승격되고, 산내면은 변산면으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로써 부안군은 1읍 12개 면이다.

부안의 행정구역

부안읍 : 동중리, 서외리, 선은리. 봉덕리, 신운리, 모산리, 행중리, 연곡리, 옹중리, 내요리, 신흥리, 외하리
주산면 : 소주리, 덕림리, 동정리, 소산리, 갈촌리, 사산리, 돈계리, 백석리,
동진면 : 봉황리, 내기리, 하장리, 장등리, 동전리, 안성리, 본덕리, 양산리
행안면 : 역리, 삼간리, 궁안리, 진동리, 대초리, 신기리
백산면 : 금관리, 용계리, 원천리, 대수리, 하청리, 거룡리, 대죽리, 평교리, 오곡리, 덕신리, 신평리, 죽림리
상서면 : 감교리, 가오리, 고잔리, 용서리, 장동리, 통정리, 청림리
하서면 : 청호리, 언독리, 석상리, 백련리, 장신리, 의복리
계화면 : 양산리, 창북리, 궁안리, 계화리, 의복리
줄포면 : 줄포리, 우포리, 장동리, 신리, 난산리, 파산리, 대동리
보안면 : 상입석리, 하입석리, 상림리, 월천리, 부곡리, 남포리, 우동리, 신복리, 유천리, 영전리
진서면 : 진서리, 석포리 운호리
변산면 : 도청리, 격포리, 마포리, 운산리, 대항리, 중계리, 지서리
위도면 : 진리, 정금리, 치도리, 대리, 거륜리, 식도리, 상왕등리, 하왕등리